‘쇠퇴하던 섬’ 일본 나오시마, 예술로 채우자 세계 '예술 성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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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시는 문화전쟁중]③세계 예술 성지, 나오시마의 기적“한국판 나오시마(直島)를 만들자.”
80년대 중반까지 암울한 외딴섬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모든걸 바꿔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등 거장 작품전시
연간 65만 예술 순례객 방문하는 핫플로
몇 년 전부터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가 심심찮게 외치고 있는 구호다. 나오시마가 인구 감소로 신음하던 외딴 섬을 문화와 예술로 부흥시킨 ‘지방 살리기의 교과서’같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나오시마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암울한 섬이었다. 도쿄에서 기차로 4시간 30분, 오사카에서는 2시간 30분을 달린 후 배로 20분을 더 가야 하는 외딴 곳. 한때 섬을 먹여살리던 구리 제련소는 업황 악화로 규모를 줄였고, 주민들은 너도나도 고향을 등졌다. 이들이 떠나간 자리엔 유독 가스로 파괴된 산림만 덩그러니 남았다.
1987년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모든 걸 바꿨다. 쿠사마 야요이와 제임스 터렐의 설치미술 작품과 모네, 이우환의 그림 등 근현대 거장의 작품이 즐비한 미술관들이 들어서며 전 세계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왔다. 8㎢ 남짓한 이 섬을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65만명. 섬을 투어하는 상품들은 반년 전부터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관광이 살아나자 이주 인구도 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최근 “나오시마로 이주하는 젊은 사람이 늘어서 집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는 국내 많은 지자체들의 ‘롤모델’이 됐다. 출장을 다녀온 공무원들도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흉내조차 제대로 못 내고 있다. 핵심 성공 비결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예술계의 냉정한 평가다.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나오시마 현장 취재,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후쿠다케 히데아키 회장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성공 비결을 심층 분석했다.
‘예술 순례객’ 몰린 나오시마, 직접 가보니
“다음 정류장은 지중미술관이에요.”지난달 19일 일본 나오시마에서 올라탄 순환버스. 60대 버스기사는 일본어 안내를 마친 뒤 한국어로 내릴 정류장을 안내했다. 영어와 스페인어 안내가 이어졌다. 버스 곳곳에서 “생큐” “그라시아스”(감사하다)란 인사가 들려왔다. 버스기사는 “7개 국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만큼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라는 방증이다.버스에서 내리자 울창한 숲에 이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미술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지만 천장 일부를 뚫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이 미술관에는 ‘인상주의의 아버지’ 모네의 수련 연작과 현대미술의 거장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이 걸려 있다. 그 앞에서 각국의 관람객이 한참 동안 말을 잃고 작품을 바라보는 광경은 마치 성지를 마주한 순례객처럼 보였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같은 ‘예술 성지 순례’ 장소가 형성된 배경과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①확실한 뚝심과 안목
37년 전인 1987년. 일본 교육 기업 베네세홀딩스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자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딴섬, 그것도 환경 파괴로 민둥산이 된 섬에 숙박 시설과 미술관을 짓고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생소해서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핵심 건물들을 설계한 건축가 안도조차 이렇게 회고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거창한 생각을 한다’고 느꼈다.”하지만 후쿠다케는 뚝심 있게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에 공감하는 예술가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2년 호텔 겸 미술관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이 들어서고, 리처드 롱 등 현대미술 거장들이 이곳에서 나오시마만을 위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자 서서히 관람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양 미술 거장들의 지중미술관(2004년), 이우환의 이우환미술관(2010년), 쿠사마 야요이 등의 밸리갤러리(2022년)가 차례로 들어서며 섬을 찾는 이는 더 늘었다.이 과정에서 돋보인 건 후쿠다케의 안목이다. 먼저 작품. ‘수련’ 등 초고가의 명작도 돋보이지만, 모든 작품이 다 비싼 건 아니다. 예컨대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쿠사마의 설치 작품 ‘호박’은 현재 수십억원대를 호가하지만, 1994년 첫 설치 당시만 해도 수천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미술관 관계자는 “2021년에 호박이 태풍에 떠내려가서 똑같은 작품을 새로 샀는데, 값이 너무 올라서 곤란했다”고 귀띔했다. 이우환 역시 미술관을 지은 2010년의 작품값이 지금의 3분의 1 이하였다.미술관의 전체적인 구성도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다. 예컨대 가장 고지대의 지중미술관에서 서양미술과 ‘빛’의 관계를 본 관객들은 언덕길을 내려와 이우환미술관에서 서양에 대응하는 동양적인 철학과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우환의 철판과 돌은 번잡한 도심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②걷고, 먹고, 자고, 즐긴다
전시가 아무리 좋아도 먹을 곳과 쉴 곳이 마땅찮다면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노인, 외국인 입장에선 방문하기 부담스럽다. 무조건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해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오시마’를 표방하는 각종 섬마을에 가기 어려운 이유다.미술관 겸 호텔인 베네세하우스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다. 기자가 묵은 방의 너비 및 집기와 청소 상태, 식사는 비슷한 가격대의 서울 호텔(1박 약 38만원)과 레스토랑(저녁 코스 약 9만5000원) 못지않았다.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 밤 11시까지 여유 있게 미술관을 돌아볼 수 있다는 특전(일반 관람객은 4시까지)을 감안하면 체감 가치는 더욱 높았다. 출장 두 달 전에도 방을 잡기 어려웠던 게 이해가 됐다.쇠락하던 마을의 빈집과 공터를 미술 전시장으로 바꾼 ‘이에(家) 프로젝트’는 ‘걷는 재미’와 ‘동네 구경하는 재미’를 더한다. 관람객들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곳곳에 숨은 전시장과 함께 일본 섬마을의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가도야’는 지은 지 200년 넘은 집으로, 주민에게 기증받았다. 섬에 함께 들어간 한국인 단체관광객 중 한 명은 “언제 일본 전통 가옥에 또 들어와 보겠냐”며 웃었다. 이들은 집 안에 설치된 일본 작가 미야지마 다츠오의 LED 설치작품 ‘시간의 바다’를 보며 “멋지다”는 탄성을 질렀다.이렇듯 나오시마에 있는 작품 대부분은 ‘장소 특정적 미술’이다. 작가들이 나오시마를 찾아와 현지를 살펴보고, 풍광과 주변 환경에 최적화된 작품을 새로 만들어 설치했다는 얘기다. 나오시마에서만 볼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과 건물, 여기에 어우러진 자연과 전통, 이 모든 걸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 나오시마를 방문한 3명 중 2명(67.1%)이 다시 오고 싶다(2021년 오카야마대 연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③진심을 다한 상생
아무리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외지인이 몰려오는 건 주민으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베네세홀딩스는 ‘점령군’이 아니라 ‘한 팀’이 되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나오시마 프로젝트 시작 이후 10년간 수없이 많은 설명회를 열고, 관련 사업에도 지역 주민을 적극 고용했다. 그 덕분에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관광객에게 도슨트 역할을 하고 거리를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만난 나오시마관광협회 관계자는 “처음엔 못 미더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국 진정성에 감복했다”고 했다.그 결과 이 섬에는 젊은 층 인구가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인구 약 3000명인 이 마을로 이주한 사람은 2015년 36명에서 2022년도엔 104명으로 늘었다. 지난 5년간 총 이주자는 500여 명. 대부분 30~40대 부부 가구이고, 20대 1인 가구도 적지 않다. 베네세홀딩스 관계자는 “기존 주민과 이주민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나오시마=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