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SG 빠진 기업 밸류업은 공허하다

[한경ESG] Editor's Letter

일본 증시가 급등하면서 그 비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도쿄증권거래소가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과 함께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상장사에 개선 계획 공시를 요구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저PBR주 열풍이 불붙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금융당국도 일본을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그러나 이런 소동이 일본 증시 부활의 진짜 원인을 제대로 짚은 것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일본 주가 급등의 바탕에는 일본 기업의 기업가치 혁명이 자리하고,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이 ESG라는 것이 지난 몇 년간 일본 기업의 변화를 지켜본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일본은 아베 내각이 일본재흥전략을 처음 내놓은 2013년부터 정부와 기업, 연기금, 금융사가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한 ESG 강화 정책을 10년 넘게 추진해왔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경제산업성 주도로 2014년 발표된 ‘이토 리포트’입니다.

연구 그룹을 이끈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교수의 이름을 본뜬 이 보고서는 일본 기업의 미래성장을 위한 개혁 플랜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기초해 기관투자자의 행동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의 행동 원칙인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제정했고, 일본공적연금(GPIF)이 투자에 ESG를 반영하며 기업에 변화를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4월에는 글로벌 수준의 ESG 역량을 갖춘 기업만 선별한 프라임 시장을 신설하는 주식시장 재편도 이루어졌습니다.

‘PBR 1배’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등장했습니다. PBR은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해 분모인 순자산을 줄이면 손쉽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PBR 개혁은 이런 자기 소모적 단기 처방이 아닌,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PBR은 자기자본이익률(ROE)×주가수익비율(PER)로 구성됩니다. ROE는 이익률과 자본 효율성을 뜻하고, PER은 시장이 평가한 기업의 미래 성장성과 위험을 의미합니다. 바로 여기서 ESG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ESG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춰 장기 기업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 제약사 에자인의 야나기 료헤이 CFO는 자사의 28년치 데이터를 분석해 ESG 투자가 PBR 상승을 가져온다는 걸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도 했습니다.일본은 ESG 경영에서 우리를 한참 추월해 앞서갑니다. 지난해 일본은 우리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기업의 인적자본 공시의무화를 전격 도입했습니다. 기후변화에 이어 새로운 이슈로 부상한 생물다양성 대응에도 발빠르게 나섭니다.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 권고안의 자발적 조기 도입을 선언한 일본 기업은 80개사로,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자연자본에서만큼은 앞서가겠다는 목표입니다.

ESG가 빠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공허합니다. 이제라도 일본의 기업가치 혁명 10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벤치마킹이 필요합니다. 〈한경ESG〉가 큐레이션 특별판 1호로 발간한 ‘잃어버린 30년을 깨운 ESG – 일본 기업의 밸류업 혁명’이 이러한 논의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장승규 기자 mtpoe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