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육성은 정치 문제 아냐"…美 하원, 원전법 '압도적 가결'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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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미국에서 원자력발전은 이제 초당파적 이슈가 됐다. 원전 육성은 정치 성향에 따라 분열될 문제가 아니다."미국 원자력 발전법(Atomic Energy Advancement Act)이 지난달 28일 연방하원에서 통과됐다. SMR, MMR 등 차세대 원전의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해당 법안은 찬성 365표, 반대 36표로 '압도적' 가결됐다. 2010년대 이후 안전성 논란 등으로 외면받았던 원전이 이제 미국 정계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력규제위원회 역할을 美FDA처럼

뉴욕타임스(NYT)는 "원자력 발전법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안정적으로 무탄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지지를 받았다"며 "여기에 원전 육성이 국가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 기대하는 공화당도 힘을 보탰다"고 전했다. 법안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차세대 원자로 설계에 대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원전 업계 재정적 지원금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후화된 석탄화력발전소의 부지에 차세대 원자로 건설을 장려하는 내용도 담겼다. 법안을 이끈 공화당 소속 제프 던컨 의원은 "이번 법안은 미국 원전 정책에서 한 세대 이상 동안 가장 중요한 업데이트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좌파 성향 싱크탱크인 써드웨이의 조슈아 프리드 기후·에너지 책임자는 "미국에서 원전이 얼마나 초당파적 이슈로 발전했는지 알 수 있게 된 의미 있는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에서 원전 규제당국의 역할을 확대 변경한 것도 눈길을 끈다.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원자로 설계의 안전성, 위험성을 심사하는 것을 넘어서 "일반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있는 원자력의 잠재력과 원자력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이점도 고려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다. 이를 통해 향후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신약의 위험과 이점을 모두 고려해 심사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같은 성격의 연방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차세대 원전 개발 가속화하나

원자력은 현재 미국 전체 전력의 18%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1996년 이후 미국에서 완공된 원자로는 단 3기에 불과하다. 방사성 폐기물과 원자로 안전성 등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대 여론이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비용 문제가 또 다른 난관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미국에 30년만에 들어선 조지아주 보글(Vogtle) 원자로 2기는 초기 추정된 예산의 2배인 350억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한 웨스팅하우스는 파산 신청을 냈다 캐나다 회사에 인수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대형 원전보다 사업비가 적게 드는 SMR 등 차세대 소형 원자로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12개의 기업이 차세대 원전을 개발하고 있다. 초기 투자금이 적어 위험 부담이 덜한 데다 모듈 등 동일한 유형의 소형 원자로를 반복해서 건설하면 향후 비용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탄소중립 달성의 한축으로 원전을 내세우며 와이오밍주, 텍사스주의 첨단 원자로 실증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차세대 원전도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승인 절차에서 발목 잡혀 있었다. 현재까지 80여종의 기술이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의해 공인된 기술은 뉴스케일사가 보유한 기술 하나다. 워싱턴 싱크탱크 브레이크스루의 아담 스타인 책임자는 "당국의 기존 규정은 일반적으로 1GW(기가와트)급 이상의 대형 원자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SMR, MMR 등 신기술에 적용하기에는 유연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가까스로 규제당국의 승인 문턱을 넘은 뉴스케일조차도 심사 기간 동안 불어난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뉴스케일은 지난해 11월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SMR 6기를 짓기로 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2년 사이에 늘어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해당 SMR의 전력 판매단가를 53% 가량 인상한 뒤로 충분한 고객사(전력 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하원에서 초당파적 법안 통과에 나선 것은 뉴스케일 같은 사업 좌초 사례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다만 NYT는 "상원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원자력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자체 법안을 각각 마련한 뒤 조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상원에서 최종 통과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