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안 돌아왔는데…인턴·전임의마저 대거 떠났다

'신규 인턴·레지던트' 3월에 와야 하는데, 대부분 '임용 포기'
지방·빅5병원 일부마저 '전임의' 대거 이탈…서울 대형병원은 "최악은 면해"
환자 피해 '눈덩이'…"응급실서 응급진료마저 중단"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그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가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을 지나서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새로 들어와야 할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마저 대거 임용을 포기했다.

일부 지방병원에서는 '전임의'마저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의사들의 '부재'로 응급실이 응급진료를 중단하는 등 의료대란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 신규 인턴·레지던트 "우리도 병원 안 간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 수련병원은 매해 3월 들어와야 하는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을 얻고자 병원에서 인턴으로 1년, 진료과목을 정한 레지던트로 3∼4년 수련하는 의사를 칭한다.

'매해 3월 1일'에 새로운 수련 연도가 시작된다.즉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 모두 이달 1일자로 각 병원에 신규 인력으로 수혈돼야 하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후 이들마저 병원으로 오지 않으면서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앞서 레지던트 1년차로 임용 예정이었던 인턴은 물론, 인턴 예정이었던 의대 졸업생들의 90% 이상이 임용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임용 포기 의사를 철회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병원은 이러한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고 전했다.서울시내 수련병원 관계자는 "지금 교수와 전임의들이 전공의들의 업무를 메우고 있지만,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들어오지 않는 이 상황에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 일부 병원서는 '전임의'마저 대거 이탈
일부 병원은 전공의는 물론 전임의마저 대거 이탈하면서 의료 공백이 더욱 악화하는 모습이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병원에서 세부 진료과목 등을 연구하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말한다.

이들은 교수들과 함께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을 지키면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이들의 이탈마저 현실화한 것이다.

전남대병원은 52명 신규 전임의 임용 대상자 중 21명이 최종 임용을 포기했다.

기존 전임의 대부분이 퇴직하는 대신 신규 전임의가 3월부터 충원돼 근무하기로 했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레지던트) 4년 차들이 전임의 임용까지 포기하면서 전임의 정원 40%가 한꺼번에 비게 됐다.

조선대병원도 정원 19명 전임의 중 13명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6명만 근무하게 됐다.

천안 단국대병원도 전임의 14명 중 군 제대 후 5월 1일자로 근무하는 4명을 제외하고, 3월부터 근무해야 하는 10명 중 5명만 계약했다.

나머지 5명은 임용을 포기했다.

대전성모병원도 전임의 7명의 계약 갱신일이 도래했지만, 일부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빅5' 병원에 속하는 서울성모병원의 상황도 좋지 않다.

서울성모병원은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계약하려고 했던 전임의의 절반 정도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의 업무를 메우던 전임의들의 이탈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경우 지난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의료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서울 대형병원은 "아주 우려했던 상황은 아냐"
다만 병원별로 상황의 차이는 있다.

서울 대형병원은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들이 상대적으로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전임의들은 이달 1일 자로 차질 없이 임용됐고, 세브란스병원도 전임의의 큰 이탈 없이 예년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들은 전공의들처럼 많이 포기한 상황은 아니다"며 "다만 아직은 상황을 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이화의료원, 고대구로병원 등도 전임의의 일부 유출이 있긴 하지만, 아직 크게 우려하거나 혼란을 야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아직 전임의들의 재계약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교수들이 지속해서 전임의들을 설득 중이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는 거의 안 돌아왔지만, 전임의는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며 "아주 우려했던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서울이나 수도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전임의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전임의와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 관리와 야간 당직까지 맡다 보니 전임의나 막내 교수 등을 중심으로 사직을 고민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 의료대란 갈수록 악화…"응급실에서 응급진료 포기"
전공의들에 이어 인턴, 전임의들의 이탈까지 현실화하면서 현장의 의료공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수술 인력 부족으로 암 환자의 수술이 연기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응급실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 운영마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구 영남대병원 응급실의 경우 의료진 부재로 외과 추적 관찰 환자 외에는 수용이 아예 불가능한 실정이다.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응급진료가 중단됐다.

계명대 동산병원 응급실도 호흡기내과 의료진이 부족해 호흡곤란 및 호흡기계 감염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환자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의 경우 아예 24시간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서울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 상황이 지속하면 수술과 진료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고, 응급실 운영도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