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단통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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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통신 시장 도입된 단통법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14년 당시 이동통신시장은 지금처럼 통신 3사의 과점체제였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을 올리려는 신생 기업 LG유플러스의 존재로 인해 지금보다는 통신사 간 경쟁이 활성화돼 있었다. 통신사들은 공격적인 단말기 지원금 마케팅을 통해 경쟁 통신사 고객을 유치하고 이들을 약정 등으로 자기 통신사에 고착화하는 영업 전략을 사용했다. 통신사 간 경쟁은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갔다. 저렴한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취지와 달리 소비자 후생 감소
지난달 정부가 법 폐기 전격 선언
규제는 없애는 게 맞지만
'비싸게 샀다' 박탈감 재발할 수도
심리적 측면 고려한 제도보완 필요
김도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문제는 지원금 경쟁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점이다. 경쟁 통신사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번호이동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것이 유리했다. 자연스럽게 번호이동을 수월히 할 수 있는 소비자가 마케팅 대상이 됐다. 이는 통신사들이 번호이동 고객을 유치하는 대리점에 판매장려금을 많이 주고, 이런 대리점은 속칭 ‘성지’가 되면서 통신사 지원금에 후한 판매장려금을 보태 매우 싼 가격에 단말기를 기습적으로 판매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같은 통신사의 똑같은 단말기를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구입하는 일이 벌어졌다.지나친 지원금 차별은 소비자들의 심리적 후생에 타격을 안겼다. 행동경제학에 의하면 사람들은 특정 행위가 상대적으로 이득인지 손실인지 따지는데 이득보다는 손실이 주는 심리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상대적 손실을 꺼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단말기를 상대적으로 싸게 산 일부 소비자가 느끼는 이득은 작지만, 상대적으로 비싸게 산 다수 소비자가 느끼는 손실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신사 간 경쟁으로 오히려 전체적인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결과가 초래됐다.
단통법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통신사와 대리점의 지원금 차별을 금지하고, 지원금 과다 지급을 제한하며, 지원금을 공시하도록 했다. 통신사와 대리점 내 지원금 차별 금지만으로는 대리점 간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대리점 지원금을 대폭 제한해 대리점 간 차별을 실질적으로 없앴다.
단통법은 소비자 차별을 막겠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을지라도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사들이 지원금 경쟁을 지양하고 통신요금 경쟁으로 전환하리라는 정부의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통신사들은 단말기 지원금과 대리점 판매장려금을 하향 평준화하면서도 비용 부담이 큰 통신요금 경쟁은 자제했다. 단통법은 통신사 간 경쟁으로 생긴 지원금 차별의 심리적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경쟁 자체를 없애버리는 극단 요법이었다.정부는 지난달 단통법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단통법으로 지원금 경쟁이 위축돼 소비자의 금전적 후생이 줄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단통법을 폐기하면 소비자 차별에 따른 심리적 후생 감소 문제가 다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단통법 제정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장 상황은 그때와는 다른 면이 있다. 통신 3사의 과점체제가 안정화돼 단통법이 폐기되더라도 공격적인 지원금 경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지원금 상한을, 그것도 매우 낮게 정하는 규제는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이는 경쟁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금전적 후생을 낮춘다. 번호이동을 통한 경쟁 촉진을 위해서라면 지원금 차별에 대한 규제도 폐기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소비자 차별에 따른 심리적 후생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지원금 공시는 유지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리점 지원금을 효과적으로 공개해 소비자가 손쉽게 비교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몰라서 ‘호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는 높은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하더라도 상대적 손실을 덜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손쉽게 지원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번호이동을 도와 통신사 간 경쟁을 촉진한다.
정부는 소비자의 금전적 후생뿐만 아니라 심리적 후생까지 고려해 통신사 간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단통법을 재단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