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위기 안에 기회 있다
입력
수정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아버지가 가장 많이 해준 말씀 중 하나다. 처음 들었던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새벽 통학 기차를 눈앞에서 놓쳤다. 늦잠 잔 때문이었다. 비 맞으며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이발소에 나가 있던 아버지에게 알렸다. 보던 신문을 접은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발사를 트럭 운전사 숙소로 심부름 보냈다. “아직 현장에 안 나갔으면 우리 애를 삼거리에서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라고 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삼거리까지 빗길을 걸어나가 기다렸다. 아버지 석재회사 운전사는 뒷산 현장에서 이미 육중한 화강암 원석을 싣고 산길을 내려왔다. 한참을 기다려서 트럭을 타고 학교에 갔다.
실은 원석이 워낙 무거워 트럭은 내가 뛰어가는 거보다 느렸다. 교문에서 내려달라고 했으나 운전사는 “사장님이 교실까지 데려다주어라”라고 했다며 정문을 통과해 비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앞까지 태워다줬다. 수업 시작 시간은 맞췄으나 운전사의 배려가 일을 키웠다. 문제는 다음날 터졌다. 비가 그친 운동장은 내가 탔던 트럭이 큰 타원형을 그리며 움푹 팼다. 항의받은 아버지는 며칠 뒤 인부와 장비를 동원해 운동장 보토(補土)와 평탄화 공사를 했다. 인척인 당시 국회의원까지 내세운 아버지는 공사를 마친 뒤 학교 교장 등과 교분을 오래 유지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관심 학생으로 분류됐다.공사가 마무리된 날 밤 아버지가 한 첫마디가 “위기 안에 기회 있다”였다. 위기(危機) 한자를 파자해가며 길게 설명한 내용은 이랬다. ‘위(危)’자는 기슭 아래에 사람이 굴러떨어진 모습을 그린 ‘재앙 액(厄)’자와 ‘사람 인(人)’이 결합해 ‘위태롭다’는 뜻을 표현한 거다. ‘기(機)’자는 ‘나무 목(木)’자와 날실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베틀을 그린 ‘몇 기(幾)’자가 결합했다. 베틀로 옷감을 짜기 위해서는 날실을 수없이 올렸다 내려야 한다는 뜻이 파생되면서 ‘몇’이란 뜻이 되었다. 베틀의 날실을 끌어 올리도록 맨 굵은 실인 잉아 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베가 잘 짜이든지 실패하게 돼 ‘기회’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아버지는 “세상에 똑같은 날은 없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어제를 정상이라 한다면 오늘은 비정상이다. 오늘이 정상이 되면 내일은 또 비정상이다. 인간은 비정상을 싫어한다. 인간에겐 정상으로 회복하려는 심리가 있다. 한가지만이라도 어제와 같으면 회복력은 작동하지 않고 정상으로 여겨 곧 잊어버리고 만다. 어제와 똑같은 날이라고 착각할 뿐이지만 잊고 이내 방심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전쟁으로 나는 오른쪽 다리를 잃으며 속도를 함께 잃었다. 발 빠른 대처능력을 잃었다”라며 “그래서 얻은 게 비상계획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낯선 곳에 가면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뒷문은 어디에 있고, 나올 때는 어느 문으로 나와야 하는지 등을 먼저 파악한다고 비상계획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날 인용한 고사성어가 ‘이환위리(以患爲利)’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뜻이다. 손자병법 제7부 군쟁편에 나온다. 우회할 때 우회하고, 이로움을 주듯이 적을 유인해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에돌아가는 것을 빠른 길로 여기고 곤란함을 도리어 이로움으로 삼으란 뜻이다. 위기 안에 기회 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피하지 말고 적절한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라고 일러줬다. 아버지는 “방심이 위기를 부른다. 편안하면 뇌는 활동을 멈춘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비상계획을 사전에 세워놓아야 할 이유다”라고 했다.“‘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와 숨겨진 기회를 발견해 변화를 촉진한다”라며 요샛말로 흔히 쓰는 비상 계획(contingency plan)인 ‘플랜 B’를 그때부터 자주 설명했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다리 잃은 장애인의 참혹한 삶을 얘기하며 “기차를 놓친 건 위기다. 늦잠 때문이고 늦잠은 방심한 탓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오늘은 어제와 엄연히 다르다. 비정상인 위기는 계속된다. 어제 썼던 방식으로는 오늘의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편안하게 지낼 때도 위기를 항상 생각하며 대비하라는 뜻인 ‘거안사위(居安思危)’를 실천하는 방법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그러나 준비해도 빈틈 있다. 이환위리 할 적극적인 방식이 비상계획을 세워두는 일이다”라고 강조하며 새겨두라고 했다. 준비를 제대로 잘하는 성질이 준비성이다. 쉽게 깨닫는 방법을 찾아 그 또한 손주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귀한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