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MZ 역사학자'가 쓴 대한제국 수난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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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마유코혐한과 K팝에 대한 열광이 공존하는 곳, 일본의 역사학자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잠식돼 가는 과정을 서술한 책이 나왔다.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역사를 공부한 젊은 역사학자의 책이다.
일본 젊은 학자가 깊이 들여다 본
대한제국 강제 병합 수난사
<한국 병합>은 도쿄대와 서울대 등에서 한국 근대사를 공부한 모리 마유코 도쿄여대 교수가 대한제국의 수립에서 붕괴에 이르는 과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본 결과물이다. 저자는 그간 한국 병합에 관한 일본의 연구나 책이 주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 초점이 치우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일본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고,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거나 동조했던 다양한 인물과 세력의 역할을 분석한다. 일본인 학자가 대한제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 측 기록과 사료 중심으로 당대를 분석해 온 일본 학계의 시각을 넘어 한일 양쪽의 사료를 고루 분석했다.
책은 조선 왕조와 중국 간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후 그 정체성이 서구식 조약 체제 유입 이후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를 소개한다. 청일전쟁을 계기로 과거의 중화 질서가 해체되면서 일본과 러시아 세력이 대두하고, 그 속에서 조선이 맞이한 위기와 변화를 다룬다.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이유로 조선에 출병한 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다투며 끝내 청일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이 무렵 조선은 갑오개혁을 단행해 국가의 각종 체제를 대폭 바꾸고 청의 예속에서 벗어났음을 선언한다. 이후 대한제국 수립에 이르기까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많은 위기를 겪는다.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한·일 의정서, 제1·2차 한일 협약 등 체결을 강제당하며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다. 고종에서 순종으로의 강제 양위 직후에는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의 내정은 일본에 완전히 장악되고, 결국 1910년 8월 이른바 '한국 병합 조약'을 체결당하며 식민지가 되기에 이른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1990년대 이후 30여 년에 걸쳐 한·일 연구자들이 한국 병합에 관해 연구한 성과와 논쟁점을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한국은 대한제국 병합과 관련해 일본과 맺은 여러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강점'(강제 점령)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 일본에선 양국의 합의해 성립한 '통치'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세대는 물론 한국인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는 국권 피탈의 상세한 역사적 과정을 다시금 짚어 본다. 논쟁과 갈등을 넘어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인식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