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김동연의 '뒷북 행정'이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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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과 중복된 R&D 지원책중소벤처기업부 연구개발(R&D)사업 부서 실무자들에게 지난 두 달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정부의 R&D 예산 축소 기조 속에 중기부 R&D 예산은 전년보다 23%(4150억원) 쪼그라들었다. 예산 삭감을 통보받은 기업엔 청천벽력이었고, 이를 알려야 하는 정부와 공공기관 담당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도내 뿌리기업 살리는 묘안 시급
최형창 중소기업부 기자
지난 1월 중순 중소벤처기업 4000여 곳에 대해 정밀한 옥석 가리기 없이 R&D 예산을 일괄적으로 칼질했다는 지적(▶본지 1월 17일자 A4면 참조)이 나오자, 중기부는 2주 만에 새 대책을 내놨다. 팁스(TIPS) 등 일반회계에 해당하는 창업성장사업과 기술혁신사업은 기존 확보된 예산을 활용해 R&D 지원금을 깎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기 1657곳은 계약대로 지원금을 받게 됐다. 중기부는 120억원 규모의 이자 지원 예산을 확보해 R&D 지원금이 깎인 기업에 한해 3년간 무이자 수준의 융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책이 나온 뒤 사업을 포기하려 했던 기업들은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급한 불은 일단 끈 것 같다”고 했다.폭풍 같은 두 달이 지나갔는데 5일 경기도가 뒤늦게 ‘정부 중소기업 R&D 과제 중단기업 긴급지원대책’을 발표했다. R&D 예산 삭감으로 기술 개발 중단 위기에 놓인 도내 기업에 300억원 규모의 자체 특별융자와 특례보증 결합 상품을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앙정부가 아닌 광역단체가 중소벤처기업 R&D에 관심을 보인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좋은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R&D 예산 삭감 통보 이후 김동연 경기지사가 “도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린 건 6주 전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고맙긴 한데 ‘뒷북’인 것 같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김 지사는 지난달 안산 반월산업단지를 찾아 “국내 최대 뿌리산업 집적단지인 이곳이 일자리 활성화를 통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기도에는 용접·표면처리 등 1만7000여 개 뿌리기업이 있다. 지난해 경기도 행정감사에선 뿌리기업 내 외국인력의 소통 부재와 기술 이전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정부가 올해 예산을 줄인 건 R&D만이 아니다. 뿌리산업 관련 지원 예산도 일부 줄였는데 이 문제는 조명을 못 받고 있다.
정부가 이미 시행한 조치를 흉내 내기보다 ‘김동연표 중기 대책’을 내놓는 건 어떨까. 뿌리기업들은 코로나19 기간 일감 축소와 신용등급 악화로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정부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뿌리기업의 숨통이 트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