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밀·대두 공급 과잉"…가격 하락 베팅 20년 만 최대 [원자재 포커스]

헤지펀드들 순매도 포지션 54만여건
전쟁 후 가격 급등하자 재배면적 늘려
옥수수, 밀, 대두(콩) 등 주요 식량 작물 가격이 당분간 하강 곡선을 그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러시아, 브라질 등 농업 강국들에서 생산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어서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 집계 결과 지난달까지 헤지펀드를 포함한 투기 세력들이 옥수수, 밀, 대두 선물에 대해 54만6000건의 순매도 포지션을 누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도 베팅의 규모는 약 20년 만에 최대다.이들 작물의 가격이 최근 들어 폭락세를 나타낸 데 따른 결과다.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선물은 부셸(약 25.4㎏)당 413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정점을 찍었던 2022년 4월(부셸당 814달러)의 반토막 수준이다.
밀 선물 가격도 전고점(2022년 5월·부셸당 1178달러) 대비 50% 하락한 부셸당 545달러에 형성돼 있다. 2022년 3월 부셸당 1732달러까지 치솟았던 대두 가격은 부셸당 1128달러로 내려앉았다.

장기간 지속되는 가격 하락세는 공매도 세력을 끌어들여 시장 침체를 가속화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삭소은행의 원자재 전략 책임자인 올레 한센은 “가격 하락 추세가 유지되는 한 숏포지션은 유지될 것이며 잠재적으로는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로 꼽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뒤 이들 작물 값은 일제히 급등했다. 가격이 뛰자 주요 산지의 농부들은 재배 면적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지난해 브라질의 옥수수·대두 생산량이 대폭 늘었고, 러시아는 기록적인 양의 밀을 수출했다. 러시아의 흑해항 봉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량마저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해안을 지나는 독자 수송 루트를 뚫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이들 곡물값은 바닥을 모른 하락세를 지속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라보뱅크의 수석 원자재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마그도비츠는 “풍작이 계속되면서 곡물과 종자 가격은 일종의 ‘바닥치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슈퍼마켓에 진열돼 있는 곡물 상품들의 소매 가격도 궁극적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변화, 지정학 리스크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곡물 가격 흐름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미 농무부(USDA)는 2023~2024년 브라질의 대두 수확량 전망치를 기존 1억5700만t에서 1억5600만t으로 줄였다. 지난해 미국에선 옥수수와 밀 농가들이 재배 면적을 전년 대비 4%, 5% 줄이는 움직임도 있었다.작물 선물뿐 아니라 실물까지 사들이는 상업적 트레이더들이 되려 이들 곡물에 대한 순매수 포지션을 늘리고 있어 가격 반등을 점치는 시각도 나온다. 마그도비츠 애널리스트는 “가격이 너무 낮으면 아무도 팔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재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재배량이 부족하면 결국은 가격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