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꽃인가, 우주의 성단인가…독일 현대사진 거장이 펼쳐보인 색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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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거대한 평원에 기기묘묘한 형상이 펼쳐졌다. 식물의 잎이나 꽃 같기도 하고 생물체 같기도 한 형체들은 무리를 지어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또한 개체들 사이는 다채로운 색채가 구름처럼 채우고 있다. 온갖 꽃들이 만개한 군락지나, 허블망원경이 포착한 성단(星團)이 아닐까?이 신비로운 형체와 색의 퍼레이드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독일 사진계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개인전 'd.o.p.e'에 전시된 연작의 하나다. 작가가 디지털로 창조한 이미지를 카페트에 인화한 작품들이다. 루프는 이것이 그림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미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들었으니 회화적 작업이고, 카페트에 프린트를 했으니 사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실 작가에게 장르 구분은 의미 없다. 현재 자신이 빠져들어 있는 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보여줄 뿐이다.루프가 2022년부터 발표한 'd.o.p.e'는 영국의 문인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헉슬리는 메스칼린이라는 환각 물질을 자신에게 투약하는 '환각 실험'을 통해초월적 감각의 세계를 경험했고 그것을 작품에서 묘사했었다. 루프는 이 연작에서 환상적인 세계를 펼쳐놓았다. 현실에선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 것이다.루프의 작품들엔 작은 개체들이 모여 프랙탈 구조를 이뤘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닮은, 작은 단위들이 이어져, 개체의 모습과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프랙탈 구조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과거에 없었지만 미래에 보게 될 존재를 미리 드러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생명체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사물이다. 1958년생인 루프는 유형학 사진의 창시자인 베허 부부의 제자다. 안드레아 구르스키,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슈트루트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초창기엔 유형학적 사진의 계보를 잇는 작업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 그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사진들을 확대하고 편집하거나, 영화와 애니메이션 화면을 캡처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기존의 사진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채로운 작업을 해왔다. 전시는 4월13일까지.
서울 PKM갤러리 4월13일까지
신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