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퇴근 후 집안일로 '2차 출근'하는 당신에게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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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헤스터·닉 스르니첵회사에서 고된 노동을 마치고 녹초가 된 채 퇴근한 당신, 휴식을 찾아 집에 돌아왔지만 '두번째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설거지와 빨래, 발 디딜 틈 없이 잡동사니가 널부러진 바닥 등 갖가지 집안일들이 "이제 왔느냐"며 반겨준다.
집안일 도와주는 기술은 발전했는데
가사노동은 여전히 왜 버거울까
세탁기와 청소기는 물론이고 식기세척기에 건조기, 로봇청소기까지 가사를 도와주는 최신 전자제품이 집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데도 우리는 왜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헬렌 헤스터·닉 스르니첵이 쓴 <애프터 워크>는 지금껏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탈노동 논의가 주로 임금노동의 영역에 치우쳐 왔다고 지적한다. 요리, 청소, 육아, 돌봄 등과 같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무보수 가사노동은 노동 해방 담론에서 '진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돼 왔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늘어났다고 말한다. 기대가 높아지면서 일은 자꾸만 불어난다. 청소 기술이 도입될수록 집안이 더 깨끗해지길 기대받는 식이다. 이를 '코완의 역설'이라고 한다. 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에 따르면 노동을 절감시켜주는 모든 장치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가정 내에서 노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가사노동이 점차 개인화하고 가사의 기준 자체가 높아져서다.예컨대 부엌에 기구들이 들어오면서 요리는 오랜 시간을 들이는 복잡한 일이 됐다. 수도꼭지에서 온수가 나오고 화장실이 가정의 표준 구성품이 되면서 샤워와 개인 몸단장은 더 자주, 꼼꼼히 해야 하는 일이 됐다. 기술 덕분에 자유 시간을 늘릴 역량은 커졌을지 몰라도, 그 역량을 상쇄할 만큼 사회적 규범과 기준, 기대 역시 진화한 것이다.이 책은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건축적 요소가 가사노동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본다. '공유'란 발상이 인기를 얻으면서 주방을 빼는 대신 화려한 공용시설을 제공한 고급 아파트 호텔과 협동조합주택, 사회 중퇴자들이 지은 히피 공동체, 정부가 공급하는 사회주택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진 공동 주거실험 사례를 제시한다. 저자들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여성 등 특정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를 통해 '공동 책임'의 형태로 분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책에서 제안하는 '탈가사 노동'의 해법은 공동 돌봄 등 다소 급진적이고 파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일이 끝난 뒤(애프터 워크)' 또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겐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겠다.
신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