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가 사라진 철공소 '파이프 걸이'가 이토록 화려한 오브제로

지갤러리 홍정표 개인전
‘다르게 느끼는 우리’ 4월 6일까지
홍정표, 용도없음, 벤딩 파이프 걸이(강철), 아크릴, 60 x 92 x 100 cm, 2024.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 질 들뢰즈는 '리좀적(rhizomatic) 사유'라는 새로운 철학의 틀을 제시했다. 얽히고 설킨 채 자라나는 땅속 줄기를 뜻하는 식물학 용어 ‘리좀’에서 비롯된 이 개념은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로 요약된다. 무엇도 고정돼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본질과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 미술에 대입해 본다면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미학은 여러 해석과 관점이 충돌하며 완성돼 가는 것이라고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용도없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오브제가 있다.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홍정표(48)의 개인전 ‘다르게 느끼는 우리’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다. 인테리어에 쓰이는 알록달록한 포맥스가 빼곡하게 몰드 된 이 작품의 시작점은 사실 예술의 영역 바깥에 있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에서 각종 도구나 물건을 걸어놓으려 만든 ‘벤딩 파이프 걸이’가 원래 이름이다. 수평도 제대로 맞지 않는 조악한 모양새의 철공소 용품이 매무새 좀 가다듬고 화랑에 자리 잡더니 어느새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홍정표, 다르게 느끼는 우리, 2023.
이를 두고 홍정표는 “실용성을 가졌던 사물이 전혀 동떨어진 예술이란 결과물로 도래했다”고 설명한다. 지난 6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지나가다 우연히 철공소 앞에 놓여 있는 걸 보고선 바로 구매해 작업을 하게 됐다”면서 “철공소에선 거는 용도만 갖고 있던 사물을 갤러리로 가져와 용도를 없애는 대신 미적 요소를 더해야겠단 생각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예술과 일상은 해석의 차이만 존재할 뿐 어떤 경계선도 없는 셈이다.

이런 리좀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홍정표의 실험은 전시 기획자와의 어긋난 대화가 발단이 됐다. 그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정해진 작업을 반복할 때 작업이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밝히자, 기획자가 “그건 매일 실패를 겪는 것과 같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홍정표는 “기획자도 전시 관람객도 작가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예술엔 정답이 없고, 보는 시각에 따라 비(非)예술도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 제목을 ‘다르게 느끼는 우리’라고 지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시장에 놓인 10여 점의 작품들은 저마다 어긋나는 지점들이 보인다. 받침대였던 사물은 마땅히 닿아야 할 바닥의 면적을 최소화한 채 비스듬히 선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다’로 바뀌었다. 전시 표제작인 ‘다르게 느끼는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뽐내는 앞면과 달리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보이는 뒷면은 미완의 미학이 돋보인다. 물론 작가의 의도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전시는 4월 6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