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아이 낳고 싶지 않은 나라

좌동욱 경제부 차장
중학생 남매 둘을 키워오면서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전형적인 외벌이 가구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열흘 전부터 ‘출산율 1.0 지금이 골든타임’ 기획 시리즈를 보도하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

여론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병행하면서 놀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하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자녀를 낳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높은 비율도 충격이었지만 예상 밖의 이유를 듣곤 더욱 놀랐다. ‘육아에 구속되기 싫다’거나 ‘자아실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가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답변만큼 많았다.

스스로 육아를 '민폐'라고 생각

사내 복지가 좋고 벌이가 나쁘지 않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출산·육아를 꺼리는 이유는 대부분 궤를 같이했다. 국내 간판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4)는 “잘나가던 여자 선배가 1년간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 한직으로 발령 나는 걸 보곤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공무원 김모씨(37)도 “윗사람과 동료 눈치를 자주 보다 보니 스스로가 회사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런 분위기에선 능력 있는 워킹맘들이 결국 회사를 떠난다고 인터뷰 대상자들은 입을 모았다.

저출산 시대에 여전히 출산과 양육 인프라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도 놀라움이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씨(35)는 “만 1세 안팎의 아이는 돌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어린이집도 꺼린다”며 “찾다 찾다 결국 양가 부모님에게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7살 딸을 키우는 김모 변호사(38)는 “전업맘처럼 돌봐주지 못해 딸을 볼 때마다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홍콩, 싱가포르 등의 워킹맘은 저출산 대책을 고민하는 당국자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얘기도 들려줬다. ‘필리핀 헬퍼’(가사도우미)가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월급이 한화로 80만원 정도인데 아이 돌봄과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처리해 준다고 한다. “외국인 돌봄 인력에게 최저임금제도를 예외·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의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도 현행 돌봄 비용이 과도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여성 시각으로 고민해야

출산·육아 부담에 대한 남녀 간 ‘온도 차’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취재에 응한 다수의 남성은 ‘출산·육아로 여성이 직장에서 받는 인사고과 등 불이익’에 대해 “크게 줄었다”거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답변했다. 직장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상당수 남성 관리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오랜 기간 관행으로 이어져 온 가부장적 문화와 승자독식의 경쟁 구조, 경제 성장률 둔화,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단순히 예산만 쏟아부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정부와 정치권은 선심성 퍼주기 정책에만 골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출산과 육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이게 ‘딸 바보 아빠’의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