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율감으로 난곡(難曲) 소화한 양인모 … '스위스 간판' 입증한 루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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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리뷰]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내한공연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FSL)는 1956년에 창단된 스위스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을 지낸 오스트리아 바이올리니스트 볼프강 슈나이더한과 스위스 지휘자 루돌프 바움가르트너의 주도 하에 루체른 국제음악제의 상주단체로 출발했으며, 이후 루체른 음악원 및 음악대학 출신 음악가들을 주축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창단 직후부터 스위스 국내는 물론 국외 연주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초기에는 도이체그라모폰(DG)의 간판 앙상블 가운데 하나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음반 녹음을 통해서도 국제적 지명도를 확보했다.
지난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6년 만의 내한공연에서 FSL은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연주로 자신들이 스위스를 대표하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중 하나임을 입증해 보였다. 필자는 과거 유럽 여행 중에 FSL의 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모두 현악 위주의 공연이었다. 하지만 이번 내한공연에는 악단의 관악 주자들까지 총출동했다. FSL을 현악 앙상블에서 정규 체임버 오케스트라 체제로 보강한 것은 현임 예술감독이자 리더인 호주 출신 스위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도즈의 공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공연 첫 곡이었던 프로코피예프의 ‘고전 교향곡’은 악단의 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였다. 출발은 다소 불안했는데, 현악기들은 대체로 잘 맞아 들어가는 모습이었으나 관악기들은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났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공연장들을 섭렵한 FSL에게도 롯데콘서트홀처럼 음향 특성이 강한 홀에 적응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 부조화는 (낯선 콘서트홀에서조차) 단순히 매끄러운 앙상블에 안주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해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이기도 했을 듯싶다. 앙상블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안정되어 갔고, 그러자 다니엘 도즈가 적극적인 몸짓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해석의 특징과 매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1악장과 4악장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 촘촘히 새겨 넣은 개성적인 억양과 악센트들, 마치 루체른 호반의 겨울풍경을 펼쳐 보이는 듯했던 2악장의 환상적 미감, 미뉴에트 리듬을 익살스럽게 비튼 작곡가의 의도를 독자적 감각으로 채색한 3악장 등등 매우 흥미진진한 연주였다. 다음 곡인 비외탕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에서는 우리나라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양인모가 협연자로 나섰다. 양인모는 예의 탁월한 기교와 빼어난 선율 감각으로 이 난곡을 멋지게 소화했다. 전반적인 표현이 미려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생동감이 있었다.
2부는 스위스의 현존 작곡가 리샤르 뒤뷔뇽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스 Ⅳ - ‘그래야만 한다!’’로 시작됐다. 베토벤의 마지막 실내악곡인 현악 4중주곡 16번의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유명한 모티브를 활용한 작품으로, 2017년 작이지만 화성적으로나 기법적으로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고 주요 모티브를 중심으로 집중력 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이어가는 흥미진진한 곡이었다.
각 악기들 간의 치밀한 주고받음이 관건인 이 곡에서 FSL 단원들은 치열한 집중력으로 최고조에 달한 앙상블을 들려줬다. 특히 주요 모티브가 리드미컬하게 튀어오르는 대목들을 효과적으로 포착한 점이 돋보였고, 베이스 연주자이기도 한 작곡가가 곡의 후반부에 하이라이트로 배치한 베이스 솔로도 멋지게 부각됐다. 공연의 피날레는 모차르트의 대역작 ‘주피터 교향곡’이 장식했다. 1악장에서는 다시 한 번 다니엘 도즈의 적극적인 리드와 개성이 살아 있는 해석이 두드러졌는데, 주제들을 제시할 때 세부 템포를 조정하면서 악구 간 대비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모습에서는 르네 야콥스와 같은 시대악기 연주가들의 영향이 감지되기도 했다.
또 모차르트의 절정기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푸가가 펼쳐지는 4악장에서도 FSL 단원들은 역시 독자적인 억양과 표정이 담겨 있는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비록 마지막 종결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조금 가려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악곡의 힘차고 당당한 위풍과 다성음악다운 매력을 충분히 부각한 멋진 호연이었다.
앙코르는 한 곡, 슈만의 ‘저녁의 노래’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이었다. 악단 본연의 정체성인 현악 앙상블의 매력과 정취를 차분하고 정갈하게 펼쳐 보인 이 곡을 이날 공연의 백미로 꼽아도 좋겠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