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로 왕따 정하자” 여고생판 ‘오징어게임’ 왜 리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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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10부작백연여고 2학년 5반의 학급회의가 시작된다. 아이들 얼굴엔 긴장과 불안이 가득하다. 이 시간 투표 결과로 A부터 F까지 서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꼴찌인 F등급은 얻어맞고 따돌림 당해도 저항해선 안 된다. 그게 아이들이 정한 법이니까. 무엇보다 ‘게임’일 뿐이니까.
게임으로 서열 정하는 아이들의 수싸움
오늘날 현실 담지만 전형적인 구도 아쉬워
티빙 10부작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극본 최수이, 연출 박소연)의 설정은 흥미롭다. 친구들 사이 암묵적으로 느껴지던 힘의 차이를 직접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라리 솔직하다. 성적이나 신체적 힘, 재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투표로 결정한다니 오히려 공정하고 민주적인 걸까. 어찌 됐든 내 표를 확보하기 위한 수 싸움이 필수다.
<오징어게임>의 리얼리즘과 몰입감을 기대했다면
지난 7일 6회까지 공개된 <피라미드 게임>은 심리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추구한다. 주인공은 백연여고에 막 전학 온 성수지(김지연). 낯선 게임에 방심했다가 왕따로 전락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했던 친구들이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모든 아이들이 투표 게임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기이하다. 한표 더 받기 위해 온갖 아양과 술수, 폭력까지 쓰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돈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게임에 뛰어든 자들의 이야기 <오징어 게임>처럼, <피라미드 게임> 또한 대한민국 교실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나온다.하지만 <피라미드 게임>의 로직은 더 단순하다. 다양하게 반복되는 폭력, 아이들엔 관심없는 담임 교사, 공부만 아는 반장, 상류층 아이들만 끼고 도는 학교 운영진들. 초반은 다소 빤하게 흘러간다. 게임의 배후이자 악당의 정체 또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만 아는 아이들, 이유 없이 폭력을 반복하는 아이들에게서 캐릭터의 깊이를 느끼긴 어렵다. 인간은 모두 악하다는 논리 또한 자칫 뻔한 폭로가 돼버린다.
이처럼 전형적인 학폭 이야기에 그칠 뻔한 순간 성수지가 선언한다. 게임 자체를 깨부수겠다고. 게임을 설계한 ‘특별한 아이들’의 비하인드가 밝혀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교실 밖의 역학 관계, 학부모들의 네트워크가 아이들 이야기에 끼어들며 핍진성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게임의 룰이 만날 때 드라마는 흥미로워진다. 미술 수행평가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등급에 따른다. 즉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지킨다. 어른들은 이런 모습을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칭찬한다. 사실 아이들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게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왜? 바로 그 부모들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연그룹과 학교는 그 중심에 있고, 이들의 돈과 권력에 이끌린 어른들은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끝까지 엮일 수 밖에 없다.
이를 간파한 아이들은 상대의 학부모까지 파헤치며 앞날을 개척한다. 성수지는 마냥 착한 아이가 아니다. 오랜 전학 생활 덕분에 내 자신을 보호하는 데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내 편을 규합해 질서를 흩뜨릴 줄도 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교실을 넘어
자기 자신만 알던 얄팍한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하위권 아이들이 단순 수싸움에 그치지 않고 ‘진짜 내 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꼭 필요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돈만 아는 인물들이 잠깐 진심을 내보일 때, 그 짧고 드문 순간들 덕분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처럼.<피라미드 게임>은 리얼한가. 투표 한방으로 학급 생활이 결정되는 아이들은 더 힘들까. 성적 경쟁에 매몰된 현실 고등학생보다 더 처절해보이는 것이 아이러니다. 교실 속 서열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신체적 힘(누가 더 잘 싸우나)과 세력(같이 싸울 놈이 많은가)이 위계를 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주의 문화와 우열반이 남아있던 70년대. <말죽거리 잔혹사>(2004)처럼 옥상에서의 한판 몸싸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오늘날 서열인 모양이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 ‘상승 의지’가 아이들에게 침투했던 <스카이캐슬> (2018)을 거쳐 <피라미드 게임>의 교실은 어디까지 나아갈까. 성수지는 아이들의 마음까지 얻으며 게임을 깨부술 수 있을까. 전형적인 선악 구도와 다소 편의적인 설정들을 극복하고 드라마의 깊이를 획득하느냐가 관건이다.신예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안정적이다. 그룹 우주소녀 멤버 김지연(보나)이 주인공 성수지를 맡았고, 아이브 장원영의 언니인 장다아가 그 상대인 백하린을 연기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오는 21일 10회까지 모두 공개된다. 김유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