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에게 말했다 "이 공연 꼭 와, 쉿! 그런데 출연자는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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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
한진희 매니저가 하콘의 식구로 합류하기 전의 일이다. 오랜 친구이기도 한 그는 연희동 시절부터 종종 하우스콘서트에 왔던 오랜 관객이기도 했다. 어느 날 예정에 없던 공연 일정이 갑자기 생겨 친구에게 넌지시 알려줬다. 미리 일정도, 내용도 공지되지도 않은 공연에 도대체 누가 출연하길래 그러냐는 질문에 나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비밀이야.”
친구에게마저 철저히 비밀에 부친 그 공연의 출연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었다. 출연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모인 50여 명의 관객은 공연이 시작되자 등장하는 연주자를 보며 크게 환호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 공연을 ‘번개콘서트’라 부르기 시작했다.
외르크 데무스와 함께 시작한 번개콘서트
번개콘서트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의 입국 소식을 들은 우리가 그를 하우스콘서트에 초청할 궁리를 한 것이다. 외르크 데무스는 파울 바두라 스코다, 프리드리히 굴다와 더불어 ‘빈 삼총사’라 불린 오스트리아의 전설이자 살아있는 거장이었다. 그런 그를 정식 공연장도 아닌 하우스콘서트에 초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어찌 보면 발칙한 발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음악 커뮤니티 ‘슈만과 클라라’ 등 관계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공연을 성사시켰고, 그렇게80세의 노신사가 하우스콘서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관객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한 그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쇼팽과 브람스까지 미동도 느껴지지 않는 구도자적 자세로 연주해 나갔다. 그날 모인 관객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음악에 몰입하는 것으로 그의 연주에 화답했고, 연주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터져 나온 앙코르 요청과 기립박수에 그는 다시 세 곡의 앙코르로 화답했다.
긴 프로그램에 지쳤을 법도 한데, 외르크 데무스는 공연이 끝나고 열린 와인파티에서 함께 사진촬영을 하거나 사인을 받고자 하는 관객을 마지막까지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에게 공연장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을 전하고자 했을 뿐. 젊은 관객들의 집중력에 놀랐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던 외르크 데무스와의 하우스콘서트는 그렇게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 이상의,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가장 짜릿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번개콘서트
수소문 끝에 공연을 성사시킨 외르크 데무스 때와는 반대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과의 번개콘서트는 선생님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을 불과 4일 남겨두고 갑자기 결정되었으니 이 공연은 우리에게도 번개처럼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던 번개콘서트의 주인공을 생각하니 관객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면서도, 공연 2일 전 SNS로만 공지한다는 번개콘서트의 원칙 때문에 관객이 과연 많이 찾아줄지에 대한 걱정도 컸다. 따뜻한 봄날, 관객들이 부디 하우스콘서트로 놀러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SNS에서 눈길을 끌 이미지 작업을 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 당일. 역시 연주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 사람들이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어느 피아니스트를 예상하고 온 20대 관객들이 잔뜩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맞는지 아닌지만 알려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그냥 가면 후회하실 거라고 답을 드린 관객들이 애써 찾아온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정경화 선생님과 인연이 있어 하우스콘서트를 찾으신 황병기 선생님께서 출연자가 사전에 공지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깜박 잊으시고는 큰 소리로 “내가 정경화 공연을 보러 왔는데 말이야~” 하시는 바람에, 스태프들이 사색이 되기도 했다.공연 시작이 임박해왔다. 관객들이 출연자가 누군지 모른 채로 온다는 것을 흥미로워하셨던 선생님은 “객석에 앉아 있다가 공연 직전에 얼른 드레스 갈아입고 올까?” 하실 정도로 공연 전의 묘한 분위기까지 즐겨주셨다. 혹시라도 관객들이 눈치챌까 대기실에서 활 한번 시원하게 긋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바깥으로는 전혀 그 소리가 나지 않았다.
121명의 관객이 모두 착석했다. 드디어 베일에 싸여있던 번개콘서트의 주인공의 공개될 시간이다. 관객의 시선이 온통 연주자가 들어서는 문으로 향해 있는 순간, 마침내 주인공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마치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때나 들을 법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지금까지의 모든 공연을 통틀어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번개콘서트는 ing
외르크 데무스로 시작한 번개콘서트는 김선욱, 정경화, 손열음, 크리스텔 리 & 문지영, 클라라 주미강 & 김선욱 등으로 이어져오며 그 역사를 하나씩 쌓아 나가고 있다. SNS를 통해서만, 그것도 공연 2일 전에서야 일정을 알리면서도 누가 출연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이제는 꼭 봐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는지 제법 많은 관객들이 찾는다. 때로는 번개콘서트를 먼저 요청하는 연주자도 있으니 이 정도면 하우스콘서트의 상징적인 공연이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번개콘서트 소식이 전해진다면 주저 말고 하우스콘서트를 찾으시기 바란다. 계획은 은밀하게 미리 해두지만, 알리는 건 공연 2일 전일테니. 여전히 출연자는 비밀이다.“짧았지만 우레와 같은 큰 박수가 터졌다.
관객들의 음악적 수준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이 느낌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 날의 관객은 또 하나의 훌륭한 연주자였다.
오늘 연주의 감동을 두고두고 담아 두고 싶어선가
수많은 관중들이 연주자와 함께 사진을 연신 찍고 또 찍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밤,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어 음악의 흥취가 넘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하우스콘서트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음악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외르크 데무스와의 하우스콘서트(제204회)에 오신 이지원 님의 관람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