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지우며 '당정분리' 끝낸 中양회…개도국 끌어안고 美 견제(종합)

'2인자' 총리 존재감 상실…집단지도체제 이어 또 사라진 정치 제도화 관행
국방비 7%대↑ 고속성장 유지…'전랑 외교' 벗어난 對美 관계 안정 기조
개도국 중심 다극화 주장…'北합리적 안보우려' 강조했지만 한중·중일관계 '언급 無'

올해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로의 '권력 집중'을 명실상부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이벤트로 각인됐다. '2인자' 총리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명목상 권한마저 사실상 사라지면서 중국 정치가 '시진핑 1인 체제'에 완전히 진입했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 존재감 실종 '2인자' 총리…덩샤오핑식 '당정 분리'의 공식적 종언
올해 양회 시작을 알린 것은 30여년간 이어져 온 국무원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 폐지 소식이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4기 2차회의 러우친젠 대변인은 개막 전날인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올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소한 몇 년간은 그럴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 중앙정부 수장인 국무원 총리는 통상 연례 전인대 회의 개막일에 정부공작보고(정부업무보고)를, 폐막일에는 대미를 장식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해왔다.

특히 1993년부터 정례화한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은 중국에서 국가 최고 책임자가 직접 기자들을 마주해 현안 질문을 받는 매우 드문 기회로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그간 중국 정치 제도화의 핵심 줄기는 '당정 일체화'에서 '어느 정도의 당정 분리'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당과 국가 중심을 '정치 노선 투쟁'에서 '경제 발전'으로 변경했으니 중앙정부에 기능적 독립성을 부여하자는 게 문화대혁명을 겪은 덩샤오핑 구상이기도 했다.

이후 총리는 주로 경제 분야를 책임지면서 당 총서기·국가주석·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는 최고지도자와 호흡을 맞춰왔다. 중국 바깥에선 '장쩌민(국가주석)-주룽지(총리)', '후진타오(국가주석)-원자바오(총리)' 등으로 최고지도자와 총리를 짝지어 중국 체제를 지칭하는 관행도 생겼다.

작년에 물러난 고(故) 리커창 전 총리도 한때 시 주석과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관계였던 만큼 총리 재직 시절 사회·경제 분야에서 종종 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시 주석을 오래 보좌해온 '시진핑 3기'의 리창 현 총리는 전인대 개막일 정부업무보고 외에는 이번 양회 기간 거의 한 차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서 급락한 중국 총리 위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 있고 집중된 통일 영도를 견지하면서,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관철하는 집행자·행동파·충실한 행동가(實幹家)가 되겠다"는 이례적인 말까지 했다.

그 결과 이번 양회 기간 시 주석은 예년보다 더 돋보였다.

그는 장쑤성 대표단 회의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단 회의, 중국군 대표단 회의 등에서 이번 양회의 키워드인 '신품질 생산력'(新質生産力) 같은 새로운 구호를 몸소 반복 강조했다.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임기 제한이 철폐되고, 당내 집단지도체제나 당정 분리 관행이 하나씩 깨지면서 '당의 핵심'인 시 주석으로의 권력 수렴은 더 명백해졌다.

이날 전인대 전체회의가 마지막 일정으로 40여년 만에 통과시킨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은 이런 '당정 분리의 종언'을 법적으로 명문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무원조직법은 1982년 덩샤오핑 체제 개헌에 맞춰 개정·도입된 뒤 원형 그대로 유지돼왔다.

현행 국무원조직법은 제2조에서 "국무원은 총리 책임제를 실시한다.

총리는 국무원의 업무를 지도한다"고 규정했고, '중국공산당'이나 '당'이라는 단어는 40년 넘게 이어진 이 법률 전체를 통틀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개정안은 현행 11조짜리 법률을 20개 조항으로 늘리면서 국무원이 '당의 지도' 아래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본문 곳곳에 '당'을 삽입했다.

국무원조직법 개정으로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중앙정부의 일원이 되고, 인민은행장이 장관 중 한 명이라는 점이 법적으로 명확해진 점도 변화로 꼽힌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앙은행과 총재는 정부 소속이 아닌 독립 기관으로 간주되지만, 중국에선 '당의 지도'를 받는 경제 부문 장관 가운데 한 명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 국방 예산 300조원 첫 돌파…대만해협·남중국해 갈등 속 해군 증강
중국은 양회에서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7.2% 증액한 1조6천700억위안(약 309조원)으로 편성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7.2%와 같은 것으로 2021년 6.8%, 2022년 7.1% 증가율보다 다소 높은 것이다.

'5% 안팎'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서도 3년 연속 국방 예산 증가율이 7%대를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국과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2035년까지 대양해군 건설 등 국방 현대화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한 상태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대만해협은 물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미국과 마주한 서태평양에도 해·공군력을 투사하려 한다.

시 주석은 전인대 인민해방군·무장경찰 대표단 전체회의에 참석해 특히 해군력 강화와 관련, "해양에서의 군사적 충돌 대비와 해양 권익 보호, 해양 경제 발전을 위한 준비를 조율하고 해양 관리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인대 대표인 위안화즈 중국 해군 정치위원은 이번 양회 기간 취재진에 중국이 제4호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 작년 '전랑 외교'와 온도 차…개도국 맹주 자처 '세계 다극화' 강조
외교 영역에선 미중 관계 안정화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를 포괄한 다극화 전략 기조가 재확인됐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잘못된 대중국 인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미국이 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각을 세웠다.

미국이 첨단 기술 제재 등 포위망을 계속 강화하고, 대만의 독립에 반대한다면서도 무기 판매와 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전랑(늑대전사) 외교'를 상징했던 친강 전 외교부장이 작년 양회 기자회견에서 원색적인 대미 비난을 쏟아냈던 것과 비교해보면 왕 주임의 비판은 양과 수위 모두 조절이 있었고, '협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늘어났다.

작년 양회 때는 다뤄지지 않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선 "평화 협상을 재개해 각 당사자, 특히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이 북한이 아닌 한국·미국에 있다는 인식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오는 5월 취임을 앞두고 있어 이목을 끌었던 대만 관련 입장은 공세적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의 중국' 원칙 강조와 대만 독립 반대 등 그간 중국이 표명해온 입장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대만과의 산업 협력 추진과 공동시장 구축 등 '당근'도 제시했다.

'평화 통일' 입장은 총리 업무보고에서는 빠졌지만 왕 주임은 기자회견에서 "최대한의 성의로써 평화 통일의 전망을 계속 쟁취해나가는 것"이 대만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올해 양회가 보여준 중국 외교의 초점 중 하나는 글로벌 사우스 중시 기조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서 개도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견제에 맞서는 '우군'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와 '보편적으로 이롭고(普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목표를 공언하며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단극 체제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균중국연구소는 "이번 양회에서 한중 관계와 중일 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없어 중국 외교에서 동아시아 주변국 외교의 우선순위 하락을 확인했다"고 짚었다. 연구소는 특히 왕 주임이 한미일 안보 협력 속에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 해소'를 한반도 문제 해결 방향으로 제시한 것을 두고는 "한중 관계의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됐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접점 모색이 난망하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