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호주 아웃백 텐트에서…은하수처럼 쏟아진 임윤찬의 울림

[arte] 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
책을 읽다 보면 문장 안에서 겹낫표(『』)나 홑낫표(「」)표기를 볼 수 있다. 보통 인용된 책의 제목은 겹낫표, 책의 일부분, 그림, 표 등은 홑낫표로 표시되어 있다.

좀 엉뚱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겹낫표 같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자신만의 틀에 갇힌 사람, 고정된 관점과 생각으로 세상을 대하고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 일단 어떤 사람이라는 걸 파악하고 나면 항상 예측할 수 있으니 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천성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몇 번 만나다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음악가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잘한다고 여기는 레퍼토리 몇 개만 주야장천 우려먹는 사람, 어느 곡에나 자신이 정한 스타일을 무작정 대입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공연 몇 번 보고 나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설령 안 들어본 곡이라 해도 어떻게 연주할지 뻔하니까. 하지만 이와 달리, 연주할 때마다 그때그때 새로운 계시나 영감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음악가의 연주는 이번엔 어떤 연주를 들려줄까 싶어 설레는 마음에 듣게 된다. 많은 사람을 열광시키는 소리를 가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많은 전문가가 그의 음악에 대해 여러 의견과 해석을 내놓지만, 나는 여기에 뭐라고 한마디 덧붙일 만큼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건반과 페달에서 나오는 그의 울림은 가슴을 후벼파는 공포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다. 잘 만든 공포영화에서 느끼게 되는, 온몸을 얼어붙게 하지만 지나고 나면 짜릿한 매혹을 남기는 그런 공포 말이다.

올해 초, 한 달 반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호주였다.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무대를 촬영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다른 일정이 없었다면 당연히 선뜻 응했을 요청이었지만, 전부터 계획하던 여행이라 고민 끝에 접어 두기로 하고 여행에 올랐다. 긴 여행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경험을 했지만, 돌아와 가장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다트무어(Dartmoor)와 그레이트 오트웨이 국립공원 (Great Otway National Park)에서 난생처음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일. 오트웨이 산맥(Otway Ranges)이 둘러싼 에어 강(Aire River) 서쪽 지역,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c)구본숙
밤이 되어 제법 넓은 텐트에 만족하며 모퉁이 네 곳을 백팩과 짐으로 눌러 놓고 잠을 청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하는 용도도 있고, 필요할 때 쉽게 꺼내쓰기 좋은 소지품을 넣은 짐가방들이었다. 누워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잠을 청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며 침묵을 깨더니 텐트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밤이 주는 고요함과 두려움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난데없이 소음이 생기니 평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 동물일 텐데 금방이라도 달려들면 어쩌지?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벗어나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깊은 산림 안으로 구불구불하게 난 비포장도로를 달려 제법 깊숙이 들어온 곳이었다. 새 소리야 도심에서도 들어왔고, 주변에 캠핑카가 여러 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짐승들이 작정하고 덤비면 당할 도리밖에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애벌레처럼 몸을 감싸고 있는 침낭은 보호 역할보다는 행동을 굼뜨게 할 뿐이 아닌가, 텐트는 여름용이라 천이 얇은데 혹시 찢어지면 어쩌나’ 등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름다운 숲속 자연은 밤하늘 별빛과 어우러져 매혹적이었지만, 나약한 인간이라는 처지에서 비롯한 두려움은 칠흑 같은 밤 속에서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소음에 집중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귀에 얼른 에어팟을 꽂았다. 그때 아이튠스에 저장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묘하게도 이런 와중에 집중은 더 잘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번 본 콩쿠르 우승 실황 영상도 떠올랐다. 마음이 차차 가라앉으면서 연주가 더욱더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이 순간 다른 소음을 없애버리는 음악의 힘에 대해 감탄하며 임윤찬의 연주를 듣노라니 어느새 공포는 아스라이 멀어졌다.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긴 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물을 끓여 커피를 한 잔 타서 들고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최대한 숲의 향기를 맡으며 걸으면서도 지난 밤의 동물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캥거루였을까? 코알라?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오는 벌금’이라 부른다는 쿼카? 간밤에는 음악에 의지해야 할만큼 무서웠던 경험이 이제는 새로운 즐거움의 대상이 될 줄이야. 이것도 따지고 보면 임윤찬 피아니스트 덕이 적지 않았다.
2016년에 촬영한 임윤찬 (c)구본숙
한국에 오자마자 2016년 임윤찬을 촬영했던 사진을 급히 찾았다. 호주에서 겪었던 상황과 연주자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지금 엄청난 인기 속에 쏟아지는 매력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당시는 앳되고 귀여운 느낌이 강했다. 그때의 사진과 비교해 보니 지금은 눈빛이 많이 진지해졌고 더 강해 보인다. 뭔가 묘한 아우라를 지닌 이 젊은 청년이 내는 예술의 색감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날 밤 침낭 안에서 핫팩을 손에 꼭 쥔 채 에어팟으로 들었던 피아노 소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음악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과 맞닿아 있다. 침입 받을 때의 무력감과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음악을 듣고 한참 뒤에도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의 연주에 그만큼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 <크레센도 (CRESCENDO)>를 보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엄청난 긴장을 뚫고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경쟁하며 마침내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임윤찬은 침착해 보이는데 보는 내내 내가 왜 떨렸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두운 텐트 안에서 들었던 경험이 어두운 영화관에서 들었던 상황과 같을 수는 없지만, 분명 공통점도 있었다.

수 세기 전 동굴 속에서 짐승의 기름으로 밝힌 등불을 이용하여 그린 예술이라 전해져 내려오는 동굴 벽화들이 생각났다. 동굴이든 영화관이든 공연장이든 우리는 어두운 곳에 앉아 빛이 있는 곳을 응시한다. 그리고 빛에 비친 대상이 안내해 주는 세계로, 시선이 미치는 곳 너머에 있는 환상의 세계로 따라간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임윤찬만큼 매력적인 안내자가 다시 있을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만물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3월이 됐다. 한국에서 맞이하는 봄, 다시 어두운 객석에 앉아 그의 기막힌 연주를 들으며 새삼 전율하고 싶다.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