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의 IT인사이드] 스타는 AI로 더 반짝인다

김주완 테크&사이언스부 기자
극장에서 가상현실(VR)로 체감한 K팝 그룹 에스파. 스마트폰 화면으로 짐작했던 체구보다 아주 작다는 느낌이었다. “눈앞에서 직접 보면 그렇습니다.” 이 콘텐츠를 에스파와 만든 메타버스 스타트업 어메이즈VR 이승준 대표의 설명이다.

K팝을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 인공지능(AI)과 VR 기술 덕에 공연장 첫 줄에서 콘서트를 관람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신기술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판도를 바꾼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드문드문 구전됐던 재미있는 이야기는 활판 인쇄술 등장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유성 영화로 배우는 말할 수 있게 됐고, 컬러 영화로 영화의 상상력은 화려해졌다. 인터넷 음원 서비스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출시 후 바로 즐기게 해줬다.

이런 변화를 모두 환영하지는 않았다. 15세기 독일에선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판 인쇄술이 나오고 책을 손으로 썼던 필경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1910~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서 무성 영화의 ‘여신’으로 불렸던 릴리언 기시는 목소리 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화계를 떠났다. 1999년 나온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음원 공유 서비스 냅스터는 미국음반협회 등의 소송으로 2001년 폐쇄됐고 이듬해 파산했다.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키워

AI를 둘러싼 갈등도 만만찮다. 소설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마틴, <의뢰인>의 저자 존 그리샴 등은 지난해 챗GPT가 자신의 저작물을 모방했다며 오픈AI를 상대로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소소한 갈등과 잡음에도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크게 도약했다. 저작권자와 아티스트는 더 큰 부를 얻었다. 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 확산으로 영화산업의 성장 폭은 더 커졌다. 2022년 세계 영화산업 규모는 251억6900만달러(약 33조2230억원)에 달했다. 3년 전보다 시장이 60% 커졌다.

음악산업도 정보기술(IT)이 살렸다. 불법 디지털 음원(MP3)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글로벌 음악시장은 실시간 음원 서비스(스트리밍)시장이 커지면서 되살아났다. 2022년에는 글로벌 시장 규모가 262억달러(약 34조5709억원)까지 불어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1위 음원 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에서 연간 100만달러(약 13억원) 이상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는 지난 5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AI 활용한 스타는 추가 수익

AI도 마찬가지 흐름을 타고 있다. 먼저 활용한 아티스트가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틀스는 AI의 도움으로 모든 멤버가 참여한 신곡 ‘나우앤댄’을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54년 만에 영국 음원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힐튼호텔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 래퍼 스눕독 등은 최근 메타가 개발한 ‘셀럽 AI 챗봇’에 자기 얼굴과 목소리를 제공하고 2년간 500만달러(약 66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배우 최민식은 ‘AI 보톡스’를 맞아 지난해 드라마 ‘카지노’에서 30대 얼굴로 출연했다. 그의 연기에서 나이 제한은 없어졌다. 멤버 모두 70~80대인 스웨덴 팝그룹 아바(ABBA)는 지난해 5월부터 영국 런던 공연장에서 AI로 전성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무대를 벌써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에스파 팬은 30년 후에도 2023년의 에스파, 2030년의 에스파를 VR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승준 대표의 예상이다. 10대의 뉴진스, 20대의 티모테 샬라메는 50년이 지나도 AI를 통해 노래하고 연기할 수 있게 됐다. 스타도 몸이 하나라 빡빡한 일정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제 죽어서도 AI 분신술로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