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묻고 너는 그림 같구나. 전남 장흥 비밀의 정원, 신풍갈대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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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난다는 소식을 가슴 한쪽에 끼워둔 채 전남 장흥으로 향했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신풍갈대습지를 지나고 있었다. 습지 위에는 제멋대로 자란 수풀들이 엉켜있고, 드넓은 수변 위로 기다란 나무 덱(deck)이 미지의 세계로 난 길처럼 펼쳐져 있다.
지금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다는 듯 '신풍갈대습지와 장흥다목적댐'
하늘의 표정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듯 안달이 나 있다. 시시각각 얼굴 표정을 달리하며 밀려왔다, 사라지는 구름 떼를 머리에 이고 가을 길, 첫 운을 뗀다.신풍갈대습지는 많은 사람의 애환이 서린 상징적인 곳이다. 댐 건설로 그리운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그리움이 이 안에 고여 있다. 1996년부터 10년에 걸쳐 장흥다목적댐 공사가 이뤄졌다.2006년 6월 19일 완공된 장흥댐은 목포시를 비롯한 전남 서남부 지역 10개 시군의 식수를 책임지고, 농업과 공업 용수로 활용되며 장마철 홍수를 막고, 전기를 생산하는 다목적댐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모든 개발은 개발되어야 하는 이유가 명백하여, 저편에 선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기 마련이다. 댐이 건설되며 수장된 마을은 20곳이 넘는다. 장흥군 유치면에서만 19개, 부산면 지천리 1개, 강진군 옴천면 1개 마을 일부 등 697가구 2200여 명이 수몰민이 되었다.
장흥다목적댐 물문화관에는 몇 백 년 된 당산나무에서 마지막 제를 지내는 주민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도시로 떠난 자식보다 더 자주 보고 친숙한 이웃사촌들과 총총히 모여 앉아 찍은 빛바랜 단체 사진도 남아 있다.살아생전 고향을 잃고 눈물을 흘릴 줄 어찌 알았으랴. 어른들이 남긴 한마디에 고향을 잃어본 적 없는 기자 눈도 먹먹해진다. 대도시에 재개발이 이뤄져도 그렇다. 생활하던 곳에서 그저 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가진 이도 있고, 새롭게 정비된 마을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이들도 존재한다.어쩌랴. 마음 아파도 이 사회는 두 바람을 모두 들어줄 수 없는 걸. 개발의 논리에 소박한 바람은 더이상 소박한 바람이 아니게 된다. 추억이 가득한 집이 허물어진다. 골목길이 사라진다. 내가 살던 곳의 흔적은 오직 내 기억에만 존재한다. 한 번이라도 이를 경험한 사람은 실향민의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장흥읍으로 이주한 어른들은 지금 무얼하며 지내실까. 빛바랜 사진 속 어른들의 표정은 벌써부터 고향이 그립다. 어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풍갈대습지는 가을의 문턱에 서서 고요한 아름다움을 드리우고 있다.신풍갈대습지는 관광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닌지라 습지 그대로의 운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댐이 건설되며 자연스럽게 조성된 습지는 생태공원으로서 역할을 넓히고자 목재 덱도 설치했다. 그 길 끝에는 흔들의자와 초승달 조형물도 설치해 낭만을 돋운다. 완연한 가을이 찾아오면 갈대는 황금빛으로 변하고, 겨울에는 수변의 고사목이 한 폭의 그림 같을 것이다.여행 코멘트
‘전남 장흥군 유치면 신풍리 388-1’ 주소지에 도착하면 너른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 앞은 거대한 신풍갈대습지. 덱 길에 넝쿨이 거친 생명력을 뽐내고 있으니 방문한다면 운동화와 긴 바지는 필수. 갈대군락지와 연꽃무리, 수변의 고사목이 어우러져 자연이 가꾼 정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려한 명소는 아니지만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꼭 들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