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폭설, 산양에게는 재앙 수준…사람이 도와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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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산양·사향노루센터, 탈진·고립 산양 14마리 구조
다양한 지원 폭 넓혀야…산양으로 인한 주민 피해 보상도 필요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누군가에게 낭만이지만, 야생동물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일 수 있다. 특히 올겨울 강원 산지에는 폭설이 잦았던 까닭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어느 때보다 가혹한 계절을 견뎌야 했다.
눈에 파묻힌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들은 지쳐 쓰러져 결국 싸늘히 식었다.
이렇게 폐사한 산양은 올겨울 300마리를 훌쩍 넘겼다. 전국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양 2천여마리 중 15%가 넘는 수치다.
이에 탈진·고립 위기에 빠진 산양들을 구조해 보호하고 있는 시설을 찾아 사정을 듣고자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 "이른 폭설은 산양에게 재앙…구조 작업에 주말도 모두 반납"
"올겨울은 12월부터 폭설이 잦았고, 또 많이 내렸습니다. 산양 서식지까지 먹이를 주러 가기도 힘들 정도였죠. 2007년 센터 창립 이후 이렇게까지 산양에게 가혹한 겨울은 처음입니다.
산양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죠."
13일 양구군 동면에 자리한 양구 산양·사향노루센터에서 만난 조재운 센터장은 지난달 말 고성 진부령에서 어린 산양을 구조하는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유난히 힘들었던 올겨울을 설명했다.
영상 속에는 성인 허리춤까지 쌓인 눈 가운데 산양 한 마리가 탈진한 채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조 센터장은 눈밭을 헤치고 눈 속에서 산양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센터 관계자들이 올겨울 이렇게 구조한 산양은 14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산양을 산 채로 구하진 못했다.
31마리는 숨이 붙은 상태로 구조했지만 끝내 죽었고, 335마리는 폐사한 채 발견했다.
조 센터장은 이를 혹독한 서식 환경 속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라고 말했다.
많게는 1m 이상 눈이 쌓인 상황에서 여러 암컷을 거느린 수컷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서식지를 점유하고 있고, 경쟁에서 밀린 어리거나 늙은 수컷이 가혹한 곳으로 내몰리다 탈진해 숨진다는 것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구조되거나 숨진 산양의 80% 이상이 수컷이었고, 그중 85%가량이 1∼2년생 혹은 10년생 이상이었다.
조 센터장은 "초겨울부터 눈이 오면 서식지가 극단적 상황으로 변하고 12월부터 먹이 활동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지속적인 강설에 의한 피로도까지 증가했다"며 "직원들이 올겨울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구조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 고성서 울진까지 117곳 먹이 주기 추진…다양한 지원 절실해
센터는 구조뿐 아니라 겨울철 먹이 주기를 추진하며 산양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다.
센터가 자리한 양구와 화천, 춘천은 물론 고성, 속초, 삼척, 울진까지 강원·경북 10개 시군 내 산양 서식지 117곳에 고정·임시 먹이 급여대를 설치하고 건초 등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이 갈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폭설로 길이 막혀버리면 먹이를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
실제로 올겨울 어미와 새끼 산양 한 쌍이 먹이 급여대 근처에서 죽은 채 발견돼 센터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센터는 올겨울처럼 극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극단적인 이상 기후로 올겨울 같은 폭설이 잦아진다면 현재 센터가 가진 자원으로는 산양을 보호하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양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멧돼지나 고라니 등 유해조수가 논밭을 망칠 경우 농민이 보상받을 길이 있지만, 산양은 천연기념물이기에 별다른 보상책이 없다. 실제로 올겨울 배고픈 산양이 민가로 내려와 과수원을 헤집으며 연한 가지를 다 먹어 치우거나 관상용 주목을 기르는 농가에서 잎사귀를 싹 뜯은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곳에 센터 관계자가 산양을 구조하러 가면 농민들로부터 "내 밭 망쳐놓은 산양들을 쫓아내긴커녕 구해준다"는 원성을 듣기 일쑤였다.
조 센터장은 "외국에는 천연기념물이 민가에 피해를 주면 이를 보상하는 제도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오롯이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받은 피해를 보상할 길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는 올겨울 구조된 산양 14마리가 기운을 회복하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5∼10월께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구조된 원래 서식지에 재방사할 예정이다.
방사 전 산양 목에 무선 발신기를 부착해 위치를 확인하고 서식지 안정화를 통해 자연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조 센터장은 "매년 방사 행사를 열고 있지만 올해는 그 규모가 클 것"이라며 "올겨울 산양을 향한 관심이 컸던 만큼 자연으로 돌아가는 산양들에게도 많은 응원을 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다양한 지원 폭 넓혀야…산양으로 인한 주민 피해 보상도 필요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누군가에게 낭만이지만, 야생동물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일 수 있다. 특히 올겨울 강원 산지에는 폭설이 잦았던 까닭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어느 때보다 가혹한 계절을 견뎌야 했다.
눈에 파묻힌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들은 지쳐 쓰러져 결국 싸늘히 식었다.
이렇게 폐사한 산양은 올겨울 300마리를 훌쩍 넘겼다. 전국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양 2천여마리 중 15%가 넘는 수치다.
이에 탈진·고립 위기에 빠진 산양들을 구조해 보호하고 있는 시설을 찾아 사정을 듣고자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 "이른 폭설은 산양에게 재앙…구조 작업에 주말도 모두 반납"
"올겨울은 12월부터 폭설이 잦았고, 또 많이 내렸습니다. 산양 서식지까지 먹이를 주러 가기도 힘들 정도였죠. 2007년 센터 창립 이후 이렇게까지 산양에게 가혹한 겨울은 처음입니다.
산양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죠."
13일 양구군 동면에 자리한 양구 산양·사향노루센터에서 만난 조재운 센터장은 지난달 말 고성 진부령에서 어린 산양을 구조하는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유난히 힘들었던 올겨울을 설명했다.
영상 속에는 성인 허리춤까지 쌓인 눈 가운데 산양 한 마리가 탈진한 채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조 센터장은 눈밭을 헤치고 눈 속에서 산양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센터 관계자들이 올겨울 이렇게 구조한 산양은 14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산양을 산 채로 구하진 못했다.
31마리는 숨이 붙은 상태로 구조했지만 끝내 죽었고, 335마리는 폐사한 채 발견했다.
조 센터장은 이를 혹독한 서식 환경 속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라고 말했다.
많게는 1m 이상 눈이 쌓인 상황에서 여러 암컷을 거느린 수컷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서식지를 점유하고 있고, 경쟁에서 밀린 어리거나 늙은 수컷이 가혹한 곳으로 내몰리다 탈진해 숨진다는 것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구조되거나 숨진 산양의 80% 이상이 수컷이었고, 그중 85%가량이 1∼2년생 혹은 10년생 이상이었다.
조 센터장은 "초겨울부터 눈이 오면 서식지가 극단적 상황으로 변하고 12월부터 먹이 활동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지속적인 강설에 의한 피로도까지 증가했다"며 "직원들이 올겨울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구조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 고성서 울진까지 117곳 먹이 주기 추진…다양한 지원 절실해
센터는 구조뿐 아니라 겨울철 먹이 주기를 추진하며 산양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다.
센터가 자리한 양구와 화천, 춘천은 물론 고성, 속초, 삼척, 울진까지 강원·경북 10개 시군 내 산양 서식지 117곳에 고정·임시 먹이 급여대를 설치하고 건초 등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이 갈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폭설로 길이 막혀버리면 먹이를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
실제로 올겨울 어미와 새끼 산양 한 쌍이 먹이 급여대 근처에서 죽은 채 발견돼 센터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센터는 올겨울처럼 극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극단적인 이상 기후로 올겨울 같은 폭설이 잦아진다면 현재 센터가 가진 자원으로는 산양을 보호하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양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멧돼지나 고라니 등 유해조수가 논밭을 망칠 경우 농민이 보상받을 길이 있지만, 산양은 천연기념물이기에 별다른 보상책이 없다. 실제로 올겨울 배고픈 산양이 민가로 내려와 과수원을 헤집으며 연한 가지를 다 먹어 치우거나 관상용 주목을 기르는 농가에서 잎사귀를 싹 뜯은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곳에 센터 관계자가 산양을 구조하러 가면 농민들로부터 "내 밭 망쳐놓은 산양들을 쫓아내긴커녕 구해준다"는 원성을 듣기 일쑤였다.
조 센터장은 "외국에는 천연기념물이 민가에 피해를 주면 이를 보상하는 제도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오롯이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받은 피해를 보상할 길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는 올겨울 구조된 산양 14마리가 기운을 회복하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5∼10월께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구조된 원래 서식지에 재방사할 예정이다.
방사 전 산양 목에 무선 발신기를 부착해 위치를 확인하고 서식지 안정화를 통해 자연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조 센터장은 "매년 방사 행사를 열고 있지만 올해는 그 규모가 클 것"이라며 "올겨울 산양을 향한 관심이 컸던 만큼 자연으로 돌아가는 산양들에게도 많은 응원을 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