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애플레이션'…금사과 언제까지

DEEP INSIGHT

이상기후·지방소멸·수입규제
고삐 풀린 '애플레이션'

사과 한 개 5000원…1년새 2배 껑충
냉해·이상저온 겹쳐 생산량 30% 급감
병해충 유입 우려에 수입하기도 힘들어
5월 이후 햇과일 늘면 가격 안정될 수도
한국인에게 사과는 늘 곁에 있는 ‘소울 프루트’다. 사과는 저장성 과수로 1년 내내 먹는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건강에 좋은 ‘금(金)사과’로 알려져 습관처럼 사과로 아침을 때우는 이도 많다.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과일도 사과다. 이런 사과 가격이 급등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과 한 알에 5000원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최근 고공행진하는 신선식품 가격의 상징적인 품목으로 사과를 지목하기도 한다. 사과와 인플레이션을 조합한 ‘애플레이션’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사과 가격 급등은 이상 기후로 인해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 줄어든 39만4000t이었다. 공급이 감소하니 자연스레 가격이 올랐다. 사과 가격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반적인 생산량 감소로 재고 물량이 적은 데다 검역 등의 규제로 당장 수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도 기후 변화와 초고령화로 재배지가 줄어들면서 사과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 사회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 △기후 변화 △초고령화 및 지방 소멸 △수입 규제 등이 중첩돼 사과값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상 기후에 가격 뜀박질

10kg 도매가에 9만원 첫 돌파 사과 10㎏당 도매가가 9만1700원을 기록한 1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사과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신선과실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1.2% 급등했다. 32년5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었다. 치솟은 과일 가격은 애플레이션 논란을 더 키웠다. 설을 앞두고 급등한 사과 가격은 상승폭이 다소 둔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높은 수준이다. 13일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전날 사과 도매가는 ㎏당 5414원으로 전주 대비 1.96%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97.33% 높다.

사과는 저장 비율이 높은 대표적인 작물이다. 성수 출하기인 10월에 매입해 비축한 뒤 연중 공급한다. 현재 판매되는 사과는 2023년산 저장 상품이다. 당시 작황이 좋지 않아 공급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통계청 농작물 생산조사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각각 51만6000t, 56만6000t이던 국내 사과 생산량은 지난해 39만4000t으로 급감했다. 이상 기후 탓이 컸다. 권인하 대구경북능금농협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 팀장은 “지난해 봄철 저온 피해(냉해, 서리)로 착과(열매가 달리는 것) 수가 줄었고, 여름철 잦은 강우와 집중호우로 낙과가 증가한 데다 가을 수확기 직전엔 고온으로 탄저병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사과는 수확량이 줄어도 공급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수입 물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과수는 묘목 식재부터 수확 때까지의 기간이 길기 때문에 재배지를 빠르게 확대하기도 어렵다. 최근 사과 귤 등 과일 가격이 하우스 재배가 가능한 딸기 등보다 큰 폭으로 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과 수입 못 하나, 안 하나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과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오렌지 포도 망고 등 30여 개 과일의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사과는 수입한 적이 없다. 외래 병해충 유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일과 채소는 식물방역법에 따라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거쳐 병해충 안전성을 확보해야 수입이 가능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수입과일들이 이 같은 절차를 모두 통과하는 데 평균 8.1년 걸렸다.

사과는 1992년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등 11개국과 위험분석 절차를 진행 중이다.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른 일본은 현재 5단계다. 그런데 분석 과정에서 일본산 사과를 통해 나방류 등 특정 병해충이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 병해충은 과일의 표피를 갉아먹는 등 상품성 저하와 낙과 등 피해를 초래한다. 예컨대 2015년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사과 묘목 때문에 발생한 과수화상병으로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247억원의 손실 보상과 365억원의 방제 비용이 소요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산 사과 나방류의 국내 유입에 따른 위험을 차단할 방안에서 양국 전문가 간에 이견이 있어 섣불리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시적으로 검역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에 대해 검역당국 관계자는 “검역 절차를 무시하면 병해충 유입으로 농가 피해가 커질 뿐만 아니라 파프리카 배 딸기 포도 등 다른 과일과 채소 수출이 전면 중단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사과 수입이 사과 자급도 등 장기적인 국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 등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농산물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사과 가격이 높다고 규제를 푸는 것은 전반적인 공급망을 무시하고 소비자물가 이슈에만 치중한 근시안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과 가격이 높은 이유가 중간유통업체들이 폭리를 취하는 등의 후진적인 유통구조 때문이란 의혹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한 대형마트가 산지 농가에서 사 오는 사과 가격은 ㎏당 7000~9000원 정도다. 여기에 보관과 물류비용 등을 더하고, 마진을 얹어 소비자에게 파는 가격은 ㎏당 1만~1만3000원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최근 대부분 대형마트나 e커머스 등은 농산물 지역거점센터, 농가 등과 직거래한다”고 했다.

“10년내 축구장 4000개 사과밭 사라질 것”

초고령화와 지방 소멸도 사과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의 근거로 거론된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재배 면적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경북 문경시에서 37년째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민태순 씨(74)는 “자녀가 셋 있지만 과수원을 물려받겠다는 이는 없다. 너무 고된 일이라 바라지도 않는다. 많은 이웃이 비슷한 처지”라고 했다.

2033년까지 축구장 4000개 면적의 사과밭이 사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예측에 따르면 현재 3만3800㏊인 사과 재배면적은 2033년 3만900㏊로 연평균 1%가량 줄어든다. 9년간 2900㏊(8.6%), 축구장(0.714㏊) 4000개 면적의 사과밭이 사라지는 셈이다. 재배 면적 감소 탓에 사과 생산량은 올해 50만2000t에서 2033년 48만5000t까지 감소할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내다봤다.

햇과일 작황과 날씨가 관건

작년 하반기부터 고공행진한 사과값은 햇사과가 출하되는 초가을까지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5월 이후부터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2023년산 저장 사과 물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7월에 아오리 사과가 나오지만, 이는 수요가 많은 홍로 등 빨간 사과는 아니다. 4개월가량은 높은 가격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5월 이후 수박 복숭아 포도 자두 등 국산 햇과일 출하가 늘어 과일 수요가 분산되면 사과 가격 상승 압력이 약화할 수는 있다.

문제는 날씨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작년과 같이 봄철 냉해, 여름철 폭염 폭우 등이 발생하면 사과의 생장과 낙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8월 본격 출하 시점까지 날씨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사과 수급 안정을 위해선 장기적인 시각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권민수 팜에어 대표는 “기후 변화에 따른 사과 생육 전 단계에 걸친 위험 요소를 줄이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유통사의 계약재배 확대를 유도하는 한편 생육 최적지 탐색,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 등도 시급하다”고 했다.

전설리/오형주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