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공산주의 실험 '대약진 운동'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대약진운동, 인재와 자연재해 겹치며 실패
노동력 수요 늘어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높아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의 대약진운동은 시작부터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정부의 행정력이 경제계획을 아우를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정부가 제 기능을 못 하자 중국엔 빈부·도농 격차 등 최악의 경제 불균형이 찾아왔습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 원인은 폭력에 기반한 농업 집단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왜곡된 평등주의가 인민공사화운동을 통해 퍼져나가 산업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했습니다.또 중공업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투입돼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토법고로(土法高爐)도 경제에 악영향을 줬습니다. 토법고로는 전통적인 기술로 만든 용광로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인민공사 뒤뜰마다 토법고로를 설치해 인민들이 직접 강철을 생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용광로를 지필 땔감을 구하려다 곡물 수확시기를 놓쳐 수확량이 감소했습니다. 또 많은 숲이 황폐해져 오히려 농사를 망치게 됐습니다. 냄비, 자전거, 프라이팬 등을 모아 용광로에 넣은 결과 토법고로에서 생산되는 철은 순수하지 못하고 품질이 낮았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1958년에는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으로 참새 잡이 광풍이 불어 참새 개체수가 급감했고, 해충이 창궐했습니다. 먹이사슬이 무너진 결과 중국에는 대규모 흉년이 불어닥쳤습니다. 1960년에는 대규모 가뭄과 태풍 그리고 홍수가 발생해 중국 농토의 절반 정도가 피해를 봤습니다.1960년 4월, 이 와중에 중국 정부는 소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양국의 관계가 악화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소련은 중국에 파견 가 있던 과학자와 공업전문가들을 소환하며 중국에 대한 기술 원조를 중단했고, 중국 경제는 또 타격을 받았습니다.

인재와 자연재해가 겹치며 대약진 운동은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2010년 연구에 따르면 대약진운동으로 발생한 아사자는 42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책임지고 국가주석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주석직을 계승한 류사오치는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약진운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산주의 실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약진운동은 중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도 관찰됐던 현상입니다. 농업과 산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들이 필요했고, 관련 정책이 추진되며 중국 사회에는 '철의 여성' 현상이 생겨났습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