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은 의료 임상시험 규정에서 빠져있었다, 1992년까지도[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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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들어 있지 않은 자궁에는 관심이 없다""아기가 들어 있지 않은 자궁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출간
레이철 E. 그로스
의학에서 소외받아 온 여성의 몸
세계 여성의 날(매년 3월 8일)을 기념해 출간된 <버자이너>의 저자 레이철 E. 그로스는 한 자궁내막증(자궁내막조직이 자궁 외에 부착해 증식하는 질환) 전문가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로스는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이 의학을 비롯한 과학으로부터 홀대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질염을 치료할 때 몸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붕산과 항생제를 써서 질 미생물 생태계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거나, 자궁내막증 치료법으로 '임신과 출산'을 제시하는 것 등을 대표적인 근거로 든다. 해부학 시간엔 여성에게만 있는 기관인 유방은 불필요한 부속물로 보고 메스로 대충 제거한 후 근육계부터 상세히 살펴본다. 남성 환자가 전립선 수술을 받을 때면 성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신경과 혈관을 건드리지 않으려 주의하는 반면, 여성의 생식기는 어떤 신경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화성에 탐사차가 돌아다니고 인공 자궁에서 새끼 양이 자라는 시대에 왜 유독 여성의 몸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까? 여성 질환과 통증이 방치되고 구시대적인 치료 방식이 만연한 현실에 의문을 품은 저자는 해답을 찾기위해 의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 결과 그동안 그저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볼 수 없었음을 알게 됐다. 1993년이 돼서야 여성과 소수자도 임상 시험에 포함돼야 한다는 미국 연방 규정이 마련됐을 만큼,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여성의 몸은 보편적인 과학 탐구 주제에서 제외돼왔다. 가장 존경받는 고대 그리스 의사이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이름의 주인공 히포크라테스는 여성을 한 인간으로 연구한 적이 없다. 주로 산파들이 하는 말이나 여성들이 자기 몸을 직접 검진하고 전하는 말에 의존했다. 프로이트는 여성을 '남근이 없는 작은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외음부, 질, 난소, 자궁 등의 건강을 다루는 부인과가 산과와 별개로 독립한 건 불과 10년 전이다. 물론 최근 들어 여성의 삶과 몸을 총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연구자도 나오기 시작했다. 질 미생물 연구자 아히노암 레브사기와 캐럴라인 미첼은 세균성 질염 환자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여기고 감염과 재감염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일념으로 질 미생물군 이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난소생물학자 도리 우즈와 조너선 틸리는 여성들이 더는 완경이 건강에 미치는 연쇄적인 영향에 시달리지 않도록 인공 난소를 개발 중이다.
여성의 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인류 모든 몸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의학이 펼쳐질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자궁내막증의 염증 패턴은 남성의 신체 건강과 생식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질의 미생물군 연구 결과는 남성 성기에서 미생물군이 하는 역할을 더 자세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여성을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우리 앞에 더 많은 연구의 진전과 과학의 발전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