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풍작 기대감에…중국, 호주·미국산 밀 150만t 구매 취소[원자재 포커스]

밀 가격 올해 13.5%, 1년만에 25% 하락
전쟁 치르는 러·우 밀 생산량 점차 회복
루블화 절하·봄 풍작 기대감도 하락 요인
2023년 7월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역 한 농가에서 콤바인이 밀을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중 하나인 중국이 국제 밀 가격이 폭락하자 호주·미국산 밀 수입을 연이어 취소했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밀 수입업체들이 약 100만t 규모의 호주산 밀 수입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한 관계자는 중국 일부 수입업체가 호주 공급업체에 운송 비용 형태로 위약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한 무역업자는 "중국 바이어들이 일부 호주 밀 거래를 취소했으며 일부는 선적 시기를 1분기에서 2분기로, 2분기에서 3분기로 옮기고 있다"고 했다. 두바이의 한 곡물 트레이더는 중동 한 제분업체가 4월 초에 선적 예정이었던 호주산 밀을 기다리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호주산 밀 계약 취소·연기는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밀 거래 취소를 발표한 뒤에 이뤄졌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전날 미 농무부(USDA)는 중국이 지난 7일, 8일, 11일 세 차례에 걸쳐 50만4000t 규모의 미국산 밀 구매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호주산 밀 구매를 미룬 것은 국제 밀 가격 폭락 때문이다. 이날 시카고옵션거래소에서 3월 거래 밀 선물은 올해 들어 13.46%, 1년 전보다 24.97% 하락한 1부셸(=약 27.21㎏)당 533.08달러에 거래됐다. 2020년 9월 이후 최저치다.

호주 농업컨설팅업체 에피소드3의 최고경영자(CEO) 앤드류 화이트로는 "화물 취소는 약세 지표"라며 "더 싸게 밀을 다시 구매하기 위해서든, 수요가 적어서든 여전히 시장은 밀 가격을 약세를 내다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밀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2022년 2월 이후 하락세다. 경제복잡성관측소(OEC)에 따르면 2021년 전세계 밀 수출량의 24.31%를 차지하던 러시아(15.2%)와 우크라이나(9.11%)의 점유율은 전쟁이 발발한 2022년 12.48%(러시아 8.02%, 우크라이나 4.46%)로 줄었다.

양국의 밀 수출시장 점유율은 전쟁으로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며 쪼그라들었다. USDA에 따르면 러시아 밀 생산량은 2021~2022재배연도에 전년 대비 12.3% 감소한 7450만미터톤으로 집계됐다. 우크라이나는 2022~2023재배연도에 큰 타격을 받았다. 전년 대비 3분의2로 줄어든 2010만미터톤의 밀을 수확하는 데 그쳤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 밀 작황은 전쟁 이전보다 늘어났다. 러시아의 2023~2024재배연도 생산량은 전쟁 전인 2020~2021년보다 7.6% 증가한 9150만미터톤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 2023~2024재배연도 생산량은 전년 대비 11.9% 늘어난 2250만미터톤으로 집계됐다. 러시아는 전쟁 전보다 생산량이 늘어났고 우크라이나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생산량이 러시아 통계에 집계된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은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출 증가와 봄 풍작으로 인해 밀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코뱅크의 테너 앰케 곡물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통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라며 "시장은 토양 수분이 양호한 러시아의 또다른 봄철 밀 작황에 대한 기대감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1년 전보다 15% 가량 하락한 상태다.
2023년 9월 러시아 옴스쿠주 체를락스키 한 농가에서 콤바인들이 밀을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