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코앞인데 '먹튀'…산모 울린 산후조리원

경찰, 프랜차이즈 운영 일당 사기혐의 수사

드라마 협찬 등으로 인기 얻어
"당일계약 할인" 산모 유혹한 뒤
돌연 폐업…피해자 160명 달해

"잠적 하루 전에도 버젓이 계약"
전국 지점 9곳…피해 확산 우려
오는 5월 출산을 앞둔 30대 임신부 김모씨는 지난 1월 서울 마곡동의 한 산후조리원을 예약했다. 유명 드라마에 나왔다는 얘기에 안심하고 비용을 완납했으나, 출산을 코앞에 두고 해당 조리원이 폐업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임신 막바지인 김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궁 수축과 하혈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유명 산후조리원 프랜차이즈 D사에 대한 ‘먹튀 사기’ 의혹이 불거졌다. 100명이 넘는 임신부에게 출산 직후 이용할 산후조리원 예약금과 이용료를 받아 챙긴 뒤 연락을 끊어서다. 한창 출산을 준비 중인 피해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유명 산후조리원에서 예약금 먹튀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서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유명 산후조리원 D 프랜차이즈 허모 상무 등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일당은 D 산후조리원 마곡지점에서 예약자를 모집한 뒤 지난 1월 말 돌연 폐업해 예약금 등을 돌려주지 않는 혐의를 받는다.

160명가량의 임산부가 떼인 돈은 3억원 남짓이다. 산후조리원 이용 경험이 없는 20~30대 ‘초산 예비산모’가 대부분이다. 폐업 뒤 출산한 몇몇 산모는 다른 산후조리원을 급히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D사는 2019년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에 처음 문을 연 뒤 사세를 확장했다. 유명 강사와 셰프들을 초청해 강연을 열거나 드라마에 장소를 협찬하는 방식으로 인지도를 쌓았고, 지금은 전국에 아홉 개 지점을 두고 있다.D사 마곡지점은 지난해 말부터 당일 계약하면 2주 700만원인 이용료를 20% 깎아준다며 예약자를 모은 뒤 1월 말 돌연 폐업했다. 30대 산모 박모씨는 “예약한 그다음 날 폐업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지점은 항의하는 일부 예약자에게 환불을 약속하는 확인서를 써주기도 했다. 예약금 70만원을 낸 몇몇 임산부만 환불받았을 뿐 500만~800만원가량의 이용료 전액을 지급한 나머지 임산부는 대부분 환불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점까지 번질 가능성도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D사 마곡지점은 폐업 전 월세 체납 등의 문제로 건물주로부터 명도 소송을 당했다. 해당 지점이 폐업을 앞두고도 예약자를 모아 ‘먹튀’를 했다고 추정되는 이유다.피해자 대표 A씨는 “D 프랜차이즈의 다른 지점에도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마곡점을 운영하던 허 상무 가족이 다른 지점도 운영하고 있어서다. D사 동탄지점은 지난해 9월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으며, 해당 매장은 올초 다른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고 개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돌려막기 의혹도 나온다. 피해자 B씨에 따르면 D사 관계자는 “다른 지점 계약자들의 계약금과 이용료로 최대한 돌려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고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B씨는 “지금은 업체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저출생 여파로 산후조리원이 줄어든 뒤 사전 예약에 선불로 지급하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산후조리원 수는 2016년 말 617개에서 지난해 말 469개로 7년 새 23.9% 감소했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프랜차이즈업체 특성상 한 지점의 먹튀가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쳐 다른 지점도 연달아 무너질 수 있다”며 “임산부 피해는 새 생명과 직결된 만큼 피해 신고 창구를 마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