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1천억 마통' 만들었다…병원마다 '비상경영' 돌입(종합2보)

의료대란에 하루 수십억 손해…부산대병원도 '최대 600억 마통' 만들기로
'직원 무급휴가·병원 통폐합' 등 경영난 타개 안간힘
"인건비 싼 전공의 의존하면서 외형 확대에만 골몰" 비판도
전공의 집단 이탈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빅5' 병원들이 하루 수십억원씩 적자를 겪으면서 대응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적자를 견디다 못해 1천억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부산대병원도 최대 6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을 산하에 둔 연세의료원은 15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국내 대형병원 중 비상경영체제를 공식화한 건 연세의료원이 처음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주요 병원은 정부에 저금리 융자 규모를 확대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직원 무급휴가와 병동 통폐합 등에 나선 병원들도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건비가 싼 전공의에게 의존하면서 분원 추진 등 외형 확대에만 골몰한 결과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 '빅5' 병원 적자 규모 '눈덩이'…"갈수록 상황 안 좋아진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들은 규모에 따라 큰 곳은 지난해 매출에 비해 하루에 10억원 이상, 중간 규모 병원은 7억원가량 손실을 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병원은 특히 공공의료에 투자를 많이 해 원래도 적자였는데, 이번 의료공백 사태로 인해 최근에는 예년보다 하루 10억원씩 매출이 줄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원래 지난해에도 900억 적자가 났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며 "장기화할 경우 경영이 정말 어려워지고, 새로운 장비와 시설 투자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기존에 500억원 규모였던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2배로 늘려 1천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부산대병원도 500억∼6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을 다음 주 중 만들기로 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하루 5∼6억원가량의 손해가 발생했고, 이번 사태로 인한 손실액은 100∼15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전공의 87%가 사직한 부산대병원은 지난 8일부터 비상경영체제 3단계 중 2단계를 적용하고 있다.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은 지난 8일 병원 내부 게시판에 '부산대병원 임직원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비상경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도 병상 가동률이 급감한 데 따라 날마다 10억원을 훌쩍 넘는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등 연세의료원 산하 병원은 전공의들의 이탈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비상경영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금기창 연세의료원장 겸 연세대 의무부총장은 이날 의료원 내부에 '경영 유지를 위한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서신을 발송해 이같이 밝혔다.

금 원장은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산하 병원들의 진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 외에도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부득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급하지 않은 지출을 줄이며, 사전에 승인된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시기와 규모 등을 한 번 더 고려해달라"며 "세브란스를 찾는 환자의 안전과 교직원 여러분의 안녕을, 그리고 이번 사태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송도세브란스병원 건립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병원 측 관계자는 "우선 내부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병원 건립은 장기적으로 추진되는 사안이므로 당장 영향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송도세브란스병원은 연세의료원이 2026년 개원을 목표로 인천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지에 건립 중인 병원으로, 800병상 규모이다.

서울에 있는 한 수련병원은 "고령 직원이 많아 인건비가 원래 많이 나갔고 순수익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사태로 인해서 거의 매일 적자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이 2월 중순부터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3월은 더욱 손해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빅5' 병원 관계자는 "2월 19일부터 단체 행동이 시작됐고 3월까지 계속하고 있으니 상황은 더 심각하다"며 "운영자금이 모자라면 우리 병원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병원들, 정부에 "저금리대출 늘려달라"…무급휴직, 병동 통폐합도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병원들은 정부에도 손을 벌려 저금리 융자 규모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5일 "일부 사립대 병원들로부터 정부가 사립대 법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사학진흥재단 융자사업 예산을 좀 더 늘려달라는 건의가 최근 들어왔다"고 밝혔다.

사학진흥재단은 사립학교나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부속병원 시설 신·증축, 개·보수, 의료 기자재 확충 등을 위해 600억원 규모의 융자사업을 하고 있다.

금리는 연 2.67%다.

지난 1월 시중 은행 기업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가 연 5.22%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의 '저금리'다.

다만 교육부 관계자는 "예산 문제여서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당장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상당수 병원은 직원 무급휴가 제도를 도입하거나 입원 병동을 통폐합하는 등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동아대병원, 대전을지대병원, 제주대병원 등 전국 곳곳의 병원들이 의사 직군을 제외하고 간호사, 행정직, 기술직 등의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사실상 무급휴직을 강제하다시피 해 간호사 등의 반발을 산 병원들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병동 내 간호사를 대상으로, 서울아산병원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와 행정직 등을 대상으로 각각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전남대병원, 대전성모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제주대병원 등 병동 통폐합에 나서는 병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남아있는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환자를 관리하고자 병동을 조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도 이미 암 단기병동 등 일부 병동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암 단기병동은 암 환자들이 항암치료 등을 위해 단기 입원하는 병동을 말한다.

서울아산병원도 오는 18일부터 같은 진료과목이거나 동일한 질환을 앓는 환자를 중심으로 병동을 통합·재배치할 계획이다.
◇ "인건비 싼 전공의 의존하면서 '병상 늘리기'에만 몰두"
일부에서는 대형 병원들이 그동안의 '확장 경영'에서 벗어나 내실 있는 경영을 지향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건비가 싼 전공의에 의존해 병원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외형 확대에 쏟아부은 결과 상당히 취약한 재무구조를 떠안게 됐다는 비판이다.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공의인 인턴과 레지던트의 연봉은 각각 6천882만원, 7천280만원으로, 전문의(2억3천690만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대형 병원들은 전공의 의존 인력구조로 절감한 비용을 분원 설립 등 외형 확대에 쏟아부었다.

세브란스병원(인천 송도), 고려대병원(경기 남양주·과천), 아주대병원(경기 파주·평택), 인하대병원(경기 김포), 서울아산병원(인천 청라), 서울대병원(경기 시흥), 경희대병원(경기 하남), 가천대길병원(서울 송파), 한양대병원(경기 안산)이 수도권에서 2026∼2027년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의료계는 수도권에서만 9개 대학병원이 11개 분원을 추진하고 있어 2028년에는 수도권에 병상 6천여개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경기·인천에 있는 대형병원의 병상은 약 3만개이므로, 기존 병상의 20%가 넘는 신규 병상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셈이다.

전공의 의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수가 인상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를 많이 고용하지 못하는 건 낮은 수가 때문"이라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가인데, 어떻게 전문의를 고용하냐"고 반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