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과학은 여성의 몸을 홀대해 왔다"

버자이너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 제효영 옮김
휴머니스트 / 488쪽|2만7000원
“아기가 들어 있지 않은 자궁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매년 3월 8일)을 기념해 출간된 <버자이너>의 저자 레이철 E 그로스는 한 자궁내막증(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외에 부착해 증식하는 질환) 전문가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로스는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이 의학을 비롯해 과학으로부터 홀대받아 왔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질염을 치료할 때 몸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붕산과 항생제를 써서 질 미생물 생태계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거나, 자궁내막증 치료법으로 ‘임신과 출산’을 제시하는 것 등을 대표적인 근거로 든다. 해부학 시간엔 여성에게만 있는 기관인 유방은 불필요한 부속물로 보고 메스로 대충 제거한 뒤 근육계부터 상세히 살펴본다.

여성 질환과 통증이 방치되고 구시대적인 치료 방식이 만연한 현실에 의문을 품은 저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의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 결과 그동안 그저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볼 수 없었음을 알게 됐다.

1993년이 돼서야 여성과 소수자도 임상시험에 포함돼야 한다는 미국 연방 규정이 마련됐을 만큼, 인류 역사 대부분 시간 동안 여성의 몸은 보편적인 과학 탐구 주제에서 제외돼 왔다. 히포크라테스도 여성을 한 인간으로 연구한 적이 없다.저자는 여성을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우리 앞에 더 많은 연구의 진전과 과학의 발전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