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작이 명작이다…60년대생 한국 여성 화가들의 20년 전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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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갤러리현대 '에디션 R'
김민정 도윤희 정주영 3인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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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것도 20년은 묵은 거라니까요.”(정주영)
몇 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꺼내놓은 건 보물도, 금도 아닌 ‘내 그림’이다. 세 명의 여성 작가가 작업실에 오랜 세월 정성스레 보관했던 ‘구작’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갤러리현대의 올해 첫 전시 ‘에디션R’을 통해서다.갤러리현대는 지금 잘 팔리거나 주목받는 작가들의 신작을 선보이는 대신, 구작들을 살펴보고 현재로 가져와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첫 시리즈는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고(Revisit), 현재의 관점에서 미학적 성취를 재조명해(Reevaluate), 작품의 생명을 과거에서 현재로 부활시키는(Revive) '에디션 R'이다. 이를 위해 1960년대생 여성 작가 세 명, 김민정·도윤희·정주영의 작품이 '풍경'이란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였다.
이 같은 프로젝트는 갤러리현대 개관 54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풍경’. 김민정, 도윤희, 정주영 세 명의 여성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풍경화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세 작가는 모두 1960년대생으로 동시대를 산 작가들이다. 같은 시기 20-30대를 지나며 치열한 매체 실험과 탐구를 해 왔다는 점도 닮았다. 같은 시대, 비슷한 고민을 했지만 작가마다 다른 작업 특성이 드러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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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속 산봉우리, 능선과 같은 아주 작은 부분을 확대해 그린 신개념 풍경화가 소개됐다. 그는 원작 속 진경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회화로 재해석했다. 정주영의 그림을 보면 원작이 무엇인지 쉽게 맞출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번 전시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이 관객을 만난다. 1991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며 그의 작업 인생이 크게 변화한 시기의 그림들이다. 그는 유학 시절 불교와 같은 동양 사상을 동양화로 표현하는 데 주목했지만, 조형적 미학은 당시 서양에서 자주 쓰이던 공식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