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일하는 부모가 넘어야 하는 세 번의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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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범 텍사스A&M 커머스대 인적자원개발학부 교수결국 2023년 합계 출산율이 0.72명으로 떨어졌다. 2022년의 0.78명이 내심 지하실이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마치 고장이 난 잠수함에 갇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소멸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인적자원, 특히 직장인의 경력개발 관점에서 출산율에 대해 한마디를 더하려 한다.
한국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세 번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이 멀고도 외로운 길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많은 직장인 부부들이 출산을 포기하면서, 무자녀 부부인 ‘딩크족’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늦어지는 사회 진출 시기
한국 청년들의 사회 진출 시기가 지나치게 늦다. 채용에 필요한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지면서 결혼 연령도 높아지고 기대 자녀 수도 줄어든다. 점점 늦어지는 경력 시작은 생애 관점에서의 경력 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출산과 양육을 위해 잠시 직장을 그만뒀다가 이전 경력에 걸맞은 조건으로 노동 시장에 재진입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의 축적된 전문성이 요구된다.어렵게 취업에 성공해서 이제 겨우 업무를 배워나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경력으로 직장을 그만두면 향후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 자기 경력에서의 성공 그리고 미래의 소득을 포기하면서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의 신입사원 채용 관행을 개선해 청년들이 좀 더 일찍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업무 환경
최근 직업 건강 및 스트레스 관련 심리학 연구에서 일하는 방식의 예측 가능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재택근무와 단기 노동 계약을 통한 ‘긱 워크(gig work)’ 증가와 같은 근무 형태의 변화로 인해, 삶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일상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하는 부모는 업무 환경이 너무 자주 바뀌고 그런 변화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자녀가 2~3세를 전후로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일하는 부모는 육아를 위한 일정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자녀를 보육기관 종료 시각에 맞춰 데리러 가야 한다면,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이동해야 한다. 휴일에 가족과의 일정이 있다면, 그날은 일에서 벗어나 가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할 일을 다 마치고도 상사 눈치를 보며 퇴근하지 못하거나, 휴일 직전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에 급히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계속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일하는 부모가 안정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인사제도와 조직문화 개선이 아직도 너무 아쉽다. 가족 친화적 경영으로 강력한 채용 브랜드를 구축한 기업들의 우수 사례가 확대될 수 있는 유인책 마련이 요구된다.
짧은 초등학교 정규 교육 시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이 있다.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정이 확대되고 친척이나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든 요즘, 학교는 유일한 커뮤니티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점심시간을 포함해 오후 1시나 2시면 끝나버린다. 이는 양가 조부모나 보모의 도움이 없는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자녀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자녀가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부모는 천신만고 끝에 이룬 경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린 자녀가 방과 후 수업과 사교육 기관을 전전하고 밤늦게까지 학원 숙제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 비교했을 때 81% 수준, 미국과 비교해서는 67% 수준에 불과한 초등학교의 정규 교육 시간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수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정책이 도입됐다. 하지만 간헐적이고 제한적인 지원으로는 아이를 낳고 세대를 이어가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따르기가 녹록지 않다. 일하는 부모가 이 험난한 여정을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연속적이고 포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