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종신집권'에 분노…투표소에 방화·연막탄 투척

러시아 대선 저항운동 확산
투표함에 액체 쏟아붓고
선거 포스터 훼손 잇달아

우크라, 러 정유시설 등 공격도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러시아 청년애국단체가 러시아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기로 승리를 뜻하는 ‘V자’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푸틴 5선’이 사실상 확정된 이번 대선에 대해 반정부 러시아 기업가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정치적 플래시몹”이라고 비판했다. 타스연합뉴스
사흘간의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지난 15일 시작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투표용지, 선거 포스터 등을 훼손하거나 투표장에 불을 지르고, 연막탄을 던지는 등의 행위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 내 주요 정유시설 등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17일 프랑스 매체 르몽드 등 외신에 따르면 15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명한 투표함에 잉크로 추정되는 녹색 액체를 쏟아부어 투표용지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날 보로네시, 로스토프, 볼고그라드, 크림반도 등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투표용지가 훼손됐다.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소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벌어졌다.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선 여성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방화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시베리아에선 유권자가 투표소, 선거 포스터를 향해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 첫 이틀간 투표함에 각종 액체를 쏟아 투표용지를 훼손하려고 한 사건이 20건 있었으며, 방화와 연막탄 투척 시도도 8건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첫날인 지난 15일 모스크바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함을 겨냥한 방화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방화, 잉크 투척 등 투표 방해 사건이 전역에서 15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독립매체 메두사 텔레그램 캡처
러시아 정계에선 이런 방해 행위가 반정부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의 저항 운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의 정적’이라고 불리던 나발니는 지난달 옥중 의문사했다. 나발니는 2017년 괴한이 뿌린 녹색 살균소독액을 맞고 실명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대선 마지막 날인 17일 낮 12시 전국 투표소에서 무효표를 던지는 등 저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로이터통신은 17일 모스크바를 향해 오는 다수의 드론을 러시아 방공 시스템이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크라스노다르주의 슬라뱐스크 정유 공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했으며 한 명이 숨졌다고 현지 지역 당국자들이 전했다.일각에서 푸틴 대통령의 부정선거 논란도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 독립 매체 시레나는 15일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열을 가하면 글씨가 사라지는 특수잉크가 내장된 펜을 기표 용구로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선 직접 후보를 명시한 칸에 펜으로 선을 그어 투표한다. 개표 과정에서 투표 결과를 조작할 것이란 우려가 큰 이유다.

올해 처음 도입된 전자투표제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러시아 정부는 27개 지역과 우크라이나 점령지 2곳에서 사상 최초로 전자투표를 시행했다. 러시아 시민단체들은 개표 과정을 감시할 수 없어 조작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각종 논란에도 푸틴 대통령의 5선 당선은 이미 확정됐다는 평가다. 경쟁자의 지지율이 미미해서다. 대신 득표율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2018년 최고 득표율(76.69%)을 깨고 80%대를 넘겨야 그나마 반발 여론을 억누를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푸틴 대통령이 오는 5월 7일 새로 취임하면 2030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2000년 첫 당선된 이후 총 30년의 장기집권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29년)의 집권 기록을 넘게 된다. 2020년 개헌을 통해 3연임 금지를 무력화한 탓에 2030년 선거에도 출마할 수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