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로 퇴학·이혼하면 성찬 금지…교회 기록으로 본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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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매우 엄격…홍난파·최현배·김마리아·윤이상 세례 기록도
새문안교회 1907∼1967년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 발간 "남학도 ×××과 여학도 ○○○이 합당치 못한 편지 내왕이 있다고 지나간 4월분에 출학(黜學·퇴학)을 당한 고로…"(1913년 7월 3일 당회록)
"××× 씨가 행랑채를 외인(外人)에게 세(貰)를 주었는데 그 세로 온 사람이 술장사를 시작한 지 여러 달이로되 ××× 씨가 금지하지도 아니하고 내보내지도 아니하는 고로 (중략) 당회에서 청하여 권면(勸勉·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하고 선유(善諭·좋게 타이르다)하되…."(1908년 5월 15일 당회록)
"○○○ 협의 이혼 사안에 대하여 은책(隱책[言+責]·은밀하게 꾸짖음)을 통고하고 수찬 정지(성찬 예식 참가를 금지하는 벌)키로 하다. "(1963년 12월 18일 당회록)
한국 최초의 기독교 조직교회(당회가 구성된 교회)로 꼽히는 새문안교회의 당회록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당회록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목회자와 함께 교회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당회 회의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 근현대 한국사회 모습이나 교계의 질서와 관련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새문안교회가 1907∼1967년의 당회록을 현대어로 옮긴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최근 공식 발간했다. 여기에는 고어체 한글, 한자 등을 혼용해 당회록을 기록한 시기가 포함된다.
당회록을 보면 20세기 초에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퇴학당할 정도로 남녀 학생의 관계에 대한 사회 규율이 엄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세입자가 술장사하는 것을 묵인하면 교회에서 지탄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혼인과 이혼에 대한 현대와는 사뭇 다른 시각도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술이나 담배에 엄격했던 것도 알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한 신자가 교회 규정에 따라 벌을 받거나 술을 마신 교인이 당회에 불려 가 다시는 안 마시겠다고 약속한 사례 등이 기록돼 있다.
1964년 당회록을 보면 "주초(酒草·술과 담배)를 하던 (성가)대원들로부터 앞으로 금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일정 기간 후 복대(復隊)시키기로 하였으니 당회원들의 협조를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정치적 격변기의 교회 내 동향도 알 수 있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 24일 당회록은 "4월 19일 사태로 인하여 부상된 인원을 위안키 위하여 금일 예배시에 주일 연보와 특별하게 하여 사용금액 한도는 재정부에 일임하고 행사는 봉사부에 일임하다"라고 기록했다.
같은 해 5월 8일 당회록에는 "새문안교회 청년일동이라는 이름으로 3·15 부정선거를 중심으로 성명서를 전국 각 교회에 살포한 것은 사전 당회에 수의(隨意) 없이 행한 처사이므로 청년대표에게 설유(說諭·말로 타이름)키로 하고…"라고 쓰여 있다.
현대어 풀이 작업을 담당한 박장미 새문안교회 권사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3·15 부정선거를 적극적으로 규탄하였고, 이어 4·19 시위에도 참가했고 그중에는 다친 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당회록에는 한글학자 최현배(崔鉉培·1894∼1970), 작곡가 홍난파(洪蘭坡·본명 홍영후·1897∼1941)와 윤이상(尹伊桑·1917∼1995),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 등의 세례 기록이 포함됐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1881∼1950)이 초기에 당회록 서기로 활동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현대어 풀이본 발간으로 근현대 시기 교회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회록 영인본을 함께 실었기 때문에 근현대 언어 연구 자료로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당회록 열람을 요청하는 연구자나 신자들이 꽤 있었으나 원본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영인본이 있어도 표기 방식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 쉽지 않았다.
새문안교회 역사관에서 봉사해 온 한문 교육자 박 권사가 여러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8년에 걸쳐 작업한 끝에 현대어 번역본이 빛을 보게 됐다. 새문안교회 당회장인 이상학 목사는 당회록이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강점기의 힘든 시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을 거친 기독교 역사의 한 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물"이라며 "앞으로도 새문안교회는 역사 유물로 전해지는 문헌 자료들의 현대어 풀이 작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새문안교회 1907∼1967년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 발간 "남학도 ×××과 여학도 ○○○이 합당치 못한 편지 내왕이 있다고 지나간 4월분에 출학(黜學·퇴학)을 당한 고로…"(1913년 7월 3일 당회록)
"××× 씨가 행랑채를 외인(外人)에게 세(貰)를 주었는데 그 세로 온 사람이 술장사를 시작한 지 여러 달이로되 ××× 씨가 금지하지도 아니하고 내보내지도 아니하는 고로 (중략) 당회에서 청하여 권면(勸勉·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하고 선유(善諭·좋게 타이르다)하되…."(1908년 5월 15일 당회록)
"○○○ 협의 이혼 사안에 대하여 은책(隱책[言+責]·은밀하게 꾸짖음)을 통고하고 수찬 정지(성찬 예식 참가를 금지하는 벌)키로 하다. "(1963년 12월 18일 당회록)
한국 최초의 기독교 조직교회(당회가 구성된 교회)로 꼽히는 새문안교회의 당회록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당회록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목회자와 함께 교회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당회 회의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 근현대 한국사회 모습이나 교계의 질서와 관련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새문안교회가 1907∼1967년의 당회록을 현대어로 옮긴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최근 공식 발간했다. 여기에는 고어체 한글, 한자 등을 혼용해 당회록을 기록한 시기가 포함된다.
당회록을 보면 20세기 초에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퇴학당할 정도로 남녀 학생의 관계에 대한 사회 규율이 엄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세입자가 술장사하는 것을 묵인하면 교회에서 지탄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혼인과 이혼에 대한 현대와는 사뭇 다른 시각도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술이나 담배에 엄격했던 것도 알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한 신자가 교회 규정에 따라 벌을 받거나 술을 마신 교인이 당회에 불려 가 다시는 안 마시겠다고 약속한 사례 등이 기록돼 있다.
1964년 당회록을 보면 "주초(酒草·술과 담배)를 하던 (성가)대원들로부터 앞으로 금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일정 기간 후 복대(復隊)시키기로 하였으니 당회원들의 협조를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정치적 격변기의 교회 내 동향도 알 수 있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 24일 당회록은 "4월 19일 사태로 인하여 부상된 인원을 위안키 위하여 금일 예배시에 주일 연보와 특별하게 하여 사용금액 한도는 재정부에 일임하고 행사는 봉사부에 일임하다"라고 기록했다.
같은 해 5월 8일 당회록에는 "새문안교회 청년일동이라는 이름으로 3·15 부정선거를 중심으로 성명서를 전국 각 교회에 살포한 것은 사전 당회에 수의(隨意) 없이 행한 처사이므로 청년대표에게 설유(說諭·말로 타이름)키로 하고…"라고 쓰여 있다.
현대어 풀이 작업을 담당한 박장미 새문안교회 권사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3·15 부정선거를 적극적으로 규탄하였고, 이어 4·19 시위에도 참가했고 그중에는 다친 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당회록에는 한글학자 최현배(崔鉉培·1894∼1970), 작곡가 홍난파(洪蘭坡·본명 홍영후·1897∼1941)와 윤이상(尹伊桑·1917∼1995),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 등의 세례 기록이 포함됐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1881∼1950)이 초기에 당회록 서기로 활동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현대어 풀이본 발간으로 근현대 시기 교회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회록 영인본을 함께 실었기 때문에 근현대 언어 연구 자료로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당회록 열람을 요청하는 연구자나 신자들이 꽤 있었으나 원본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영인본이 있어도 표기 방식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 쉽지 않았다.
새문안교회 역사관에서 봉사해 온 한문 교육자 박 권사가 여러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8년에 걸쳐 작업한 끝에 현대어 번역본이 빛을 보게 됐다. 새문안교회 당회장인 이상학 목사는 당회록이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강점기의 힘든 시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을 거친 기독교 역사의 한 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물"이라며 "앞으로도 새문안교회는 역사 유물로 전해지는 문헌 자료들의 현대어 풀이 작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