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만화가들에게서 오래도록 은은히 빛날 수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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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마츠모토 타이요 만화, 이주향 옮김, 문학동네, 2023
30년 차 만화 편집자의 불명예 퇴직이 남긴 것들
손때 묻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3/01.36155351.1.jpg)
30년 동안 묶여 있던 만화라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집에 있던 만화책을 모두 처분하려고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마음을 돌린 시오자와는 다시 한번 만화책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고는 만화가들을 한 명씩 만나 원고를 청탁한다. 그런데 시오자와가 찾아간 만화가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미야자키 초사쿠는 왕년의 히트 만화가이지만, 그에게 만화는 생활비를 버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오자와조차 “빈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만화계를 은퇴하고 아파트 관리원으로 일하는 아라시마야에게는 ‘이제 그만 찾아와달라’며 거절당하고, 심지어 다른 출판사의 전담 만화가인 이이다바시를 찾아갔다가 상도덕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반짝이던 시절을 뒤로하고 속 빈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독자의 비위를 맞추며 겨우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만화가. 가족을 위해 만화를 버렸지만 결국 가족과 불화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남겨진 만화가. 더 이상 만화가가 아닌 만화가…. 시오자와는 이들의 그림을 받아 무사히 만화책을 펴낼 수 있을까. 시오자와는 무엇을 위해 만화책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아직 완결되지 않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문학동네 <동경일일>](https://img.hankyung.com/photo/202403/01.36155362.1.jpg)
유키 구라모토 같은 고령의 연주자들이 지금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 역시 세상의 기대가 아닌,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전성기는 지났을지라도, 손때 묻은 가구에서 윤기가 나듯 충실한 하루하루가 쌓이면 오래도록 은은히 빛날 수 있음을 이 만화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