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발레가 뭐라고, 아줌마 아저씨도 콩쿠르에 나오나

[arte] 김용걸의 Balancer-삶의 코어를 찾는 여행
직책이 대학의 교수이다보니 무용 콩쿠르 심사 제안을 심심치 않게 받는데 특별히 일정이 겹치지만 않으면 요청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심사석에 앉아 참가자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드는데 제법 어린 학생들의 춤을 보다 보면 그 아이들의 실력과 동시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고 중고등학생들의 춤을 보다 보면 본인이 발레를 시작했던 시절과 비슷하다보니 당시와 지금의 실력 차이가 느껴져 심사중임에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거나 엄지를 치켜 세울 정도의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아이들도 많아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근래 예전과는 다르게 무용경연대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참가자들의 부류가 있는데 바로 “비전공자”들이다.

그들의 경연 순서는 주로 경연의 가장 마지막 즈음인데 장시간의 집중을 요하는 것이 심사인지라 대회 말미에는 장시간의 심사로 꽤 피로한 상태임에도 오히려 식사 뒤 맛보게 되는 “디저트”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들의 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데 나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공자들의 춤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다른 뭔가를 그들의 춤에서는 다양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보통 심사표에는 참가자들의 참가번호와 추게 되는 작품의 제목 말고는 거의 기재되어있지 않은데 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비전공 참가자들 중엔 젊은층 외에도 나이가 제법 들어보이는 30, 40대 심지어는 50대 참가자들도 있다는걸 느낀 적이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동작과 음악의 리듬을 오히려 비전공자들이 전공자들보다 더 잘 타는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는 사실인데 “이거다!” 라고 할 정도의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추론은 있긴 하다.

“간절함”이 단어만큼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한때 발레를 전공했었든 어느날 갑자기 발레의 매력을 알게 되었든 간에 비전공자들에게 있어 “발레”는 전공자들이 생각하는 “발레”와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몸매와 실력으로 많은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는 “무대”라는 공간에 올라가 아직 몸에도 익지 않은 어색한 동작들을 웃는 얼굴로까지 해가며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전공자인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인데 “도대체 발레가 뭐길래 발레의 어떤 부분 때문에 저들은 발레를 할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판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 그들은 자신이 가장 순수한 시골 처녀인양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공주인 양 그리고 우아하고 애틋한 날갯짓으로 왕자에게 다가가는 백조인 양 자신만의 감정을 흐르는 음악선율과 역할 속에 온전히 내 맡겨 버린다.
보통 경연에서는 솔로를 추는 시간을 2분으로 제안을 하는데 어쩌면 그래서인가? 2분도 채 안되는 그 짧은 솔로 속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담아 호소하는 듯 춤을 추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캐릭터 속 인물을 해석해서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캐릭터 속 인물을 넘어선 진정한 너 자신을 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는 바로 그것을 그들은 “찰나”와도 같을 2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춤을 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중에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곁에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만들어진 말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감정이 느껴지게 되는 경우라 한다면 눈에 보이며 느껴지는 그 실체가 가장 아름다울 때일 것이며 결국 이것이 우리가 바로 “예술”이라 부르는 실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예술은 “자연스러움”일 것이고 그래서 그 자연스러움은 바로 예술로 승화되어 보여지는 “실체”이지 아닐까 싶다.

예전에 출연했던 공연 영상들을 보다보면 그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 추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는데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한다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은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걸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기 아닐까 싶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즈음,
오디션을 엉망으로 마치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짐을 챙겨 오디션장을 떠나려는 “빌리”를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멈춰 세운 뒤 “빌리”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관객들에게 말하며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거라 생각한다.

심사위원,
“빌리는 춤출때 어떤 기분이 드니?”

빌리,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걸 잊게 되죠.
그리고는.....사라져 버리는거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느낌이죠.
내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냥... 날아다니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요.....춤에 대하여 가장 순수했고 가장 솔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다 보니 그 소중했던 순간들과 마음가짐들은 이내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었지만 경연의 마지막 즈음에 어찌보면 초라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비전공자”들의 경연 속 그들의 춤에서 잃어버린 나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며 찾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발레“를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