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입맛도 만족시키는 충북 맛 기행
입력
수정
입 짧고 허약한 친구를 위해 충북 향토음식을 찾아나섰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 손맛이 담긴 음식들이 심신을 따뜻하게 덥혀줬다. “네 덕에 올겨울은 감기 안 걸릴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더 배가 불렀다.
◆ 괴산 괴강민물매운탕거리“민물고기는 비린내 나서 싫더라.” 민물매운탕을 먹으러 가자는 내 말에 친구가 대뜸 대꾸한다. “매운탕 잘하는 식당에 한 번도 못 가봤구나.” 친구를 데리고 괴산으로 향했다.
괴산읍 대덕리 괴강교 근처에 괴강민물매운탕거리가 있다. 2010년 괴산 향토음식인 민물매운탕을 특화한 곳으로, 괴강에 사는 쏘가리, 메기, 모래무지,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잡아 괴산 특산물인 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민물매운탕의 대명사인 쏘가리는 살 맛이 돼지고기처럼 좋아서 ‘수돈(水豚)’이라고도 한다. 단점이라면 다른 민물고기 매운탕보다 두 배 정도 비싼 것이랄까.쏘가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이 메기와 빠가사리다. 식당 주인장이 “메기는 살이 두툼한 대신 기름지고, 빠가사리는 살보다 국물 맛이 좋아요. 선택하기 어려우면 메기와 빠가사리를 섞은 잡어매운탕을 드세요” 한다.
입 짧은 친구가 조심스레 매운탕 국물을 한술 뜨더니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네!” 하며 매운탕을 듬뿍 떠 앞접시에 담았다. 뭉근하게 끓인 진한 국물에 “카, 시원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보은 산채정식거리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로 가다 보면, 대로 양옆에 산채정식 전문점이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채정식에 사용하는 식자재는 속리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근처 텃밭에서 무공해로 기른 농작물이다. 겨울에는 제철에 채취한 고사리, 두릅, 냉이, 쑥 같은 산나물을 잘 말렸다가 사용한다.
1만5000원짜리 기본 산채정식만 해도 각종 약초와 산나물로 구성된 20여 가지 음식이 나온다. 등치순, 궁채, 삼채 등 듣도 보도 못한 산채가 등장해 눈이 휘둥그레진다. 쌉싸래한 향이 나는 산채를 하나씩 음미하며 먹다 보면 당장 건강해질 것 같다.◆옥천 생선국수거리옥천군 청산면 생선국수거리로 향했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생선국수야말로 허약체질인 친구에게 딱 맞다. 옛날부터 청산면 사람들은 모내기가 끝나면 금강지류인 보청천에서 천렵을 했다. 민물고기를 잡아 채소와 갖은 양념을 넣고 푹 끓여 매운탕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쌀 대신 소면을 넣어 끓인 것이 생선국수의 시초다. 청산면에는 생선국수 원조집인 ‘선광집’을 비롯해 생선국수 전문점 8곳이 있다.
입소문 난 식당은 평일에도 붐빈다. 맛의 비결은 누치, 붕어 등 온갖 잡어를 아가미와 뼈, 살까지 함께 넣고 푹 끓이는 것.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체에 밭쳐 가시를 걸러낸다. 육수에 고추장을 풀고 소면을 넣어 삶은 뒤, 미나리, 호박 등의 채소를 넣어 한소끔 끓이면 완성된다.
비린내 없이 진한 국물에 소면이 들어가니 더 구수하다. 이미 퍼진 국수는 씹을 것도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생선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목욕한 것처럼 개운하다. 생선국수에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을 곁들이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청주 삼겹살거리
“삼겹살거리라니! 그런 거리도 있나? 삼겹살은 어디에 가도 다 있잖아. 꼭 청주에서 먹어야 해?” 친구가 묻는다. “삼겹살거리를 첨 듣는 게 당연해.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거리니까.
청주 사람이 옛날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돼지고기를 나눠 먹기를 좋아했대. 달인 간장에 담가 굽거나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 먹었다더라. 이러면 잡냄새가 안 나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대. 그리고 삼겹살에 묵은지를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
직원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숙성한 덩어리 고기를 싹둑싹둑 자른 뒤 노릇하게 구워준다. 다 익으면 먹는 법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소금에 찍어 드시고, 다음에 파무침과 쌈장, 마지막에 갈치속젓을 드셔 보세요.” 고기 자체가 맛있으니 뭘 찍어 먹어도 맛이 환상이다.◆ 영동 와인터널
“삼겹살 먹으니까 와인 생각 나지 않냐? 와인에 숙성한 삼겹살도 맛있는데.” 친구는 건강을 위해 자기 전에 와인 한 잔씩 마시고 잔다.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이 영동 와인터널이다. 이곳은 길이 420m 터널 안에 조성한 와인 문화 체험공간이다.영동은 전국 포도 생산량 10%를 차지하는 포도 생산지이며, 기후와 토양이 고품질·고당도 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 포도 생산량이 많은 만큼 와이너리도 많다. 와이너리에서 최고급 포도를 엄선해 와인을 만든다.
발효 포도의 자생효모를 이용해 첨가물 없이 숙성하므로 유익한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영동 소재 42개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을 시음해볼 수도 있다. 친구가 와인을 잔술로 사서 마셔본 뒤, 와인 한 병과 안주로 먹을 임실치즈를 골 랐다. “오늘 밤은 백마산 와인을 마시고 자야겠다. 꿀잠 자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