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덴 작은 걸음 수백만 번이 필요하다 [고두현의 인생명언]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길의 한 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

세계적인 등반가이자 모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그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급 14봉을 완등한 인물. 열다섯 살 때 돌로미테산의 수직 암벽들 속을 누볐고, 스물다섯 살에는 낭가파르바트산의 루팔 벽을 올랐다. 서른다섯에는 단독으로 산소마스크도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으며, 마흔다섯엔 남극지방의 한가운데를 밟았다.

동상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을 거의 다 잃은 그는 60세 되던 해에 고비사막 횡단에 나섰다. 전인미답의 극지를 누비던 그가 유럽의회 의원으로 5년간 ‘혹사’당한 뒤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떠난 ‘사막 걷기’ 여행이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그 공(空)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는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우리는 “살다 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생의 고비를 만난다”는 그의 성찰과 함께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다.

2004년 5월, 그는 배낭과 물통, 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시계만 지닌 채 동고비 사막의 바얀트우카를 출발했다. 유목민들의 천막집을 전전하면서 목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도움만으로 텅 빈 고비사막을 걸어서 가로질렀다. 고비사막 횡단이라는 힘겨운 행군은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이자 잘 늙어가는 방법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나는 편안히 내 삶에 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 드는 법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내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마음속의 사막 한가운데서 멈추지 않고, 반짝이는 오아시스를 향해 행군하고 싶었다.”그가 본 사막은 어디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고요해서 ‘물을 마시거나 귀를 기울이기 위해 멈출 때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이 사막의 정적과 광활함이 모든 시간을 없애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들을 수만 있는 움직임이 도처에 있었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들 사이에서 산들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막을 건너면서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의 사막을 함께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 모래알 사이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시간마저 잃어버린 텅 빈 공간… 그곳에서 그는 사막의 ‘비어 있음’이 주는 평안함에 감탄하고 무한한 정적 속에서 참된 쉼을 얻었다.

이 신비로운 사막 여행에서 새로운 관점을 체득한 그는 “사막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았다”고 표현했다. 또 “내 안에 있는 사막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이런 생각은 어쩌면 늙어 가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사막 언저리에서는 어느덧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내면의 황폐화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사막은 소멸을 미리 조금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고향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이럴 때 유목민의 존재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해 주는 ‘생각의 창’이다. 그는 사막의 유목민을 ‘정적과 어둠과 텅 빈 공간에서 활기를 띠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 하늘을 쳐다보았다. 신과 같은 높은 존재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의미로 처음 뜬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고갯길을 넘어갈 때는 돌 조각을 쌓아 올리고, 저녁에 천막집 앞에 앉아서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떠난 사막 여행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절대적인 고독에 직면했을지를 생각했다. 가장 순전하고 막막하고 깊고 배타적인 외로움의 극점을 그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문득,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이 떠올랐다.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