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겨울 무·여름 배추에 '지역 자조금'…정부 직접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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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지역 자조금' 제도 도입 추진올해 초 제주에선 월동 무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축구장 250개 크기인 181㏊ 넓이의 밭을 갈아엎었다. 생산 과잉으로 무 가격이 전년 대비 약 30% 넘게 폭락해서다. 시장 가격으로 무를 팔아선 판매에 들어가는 물류비용까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갓 수확한 농산물을 내다 버린 것이다.
올해 안에 법 개정하기로
수확 철마다 반복되는 ‘산지 폐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역 집중도가 높은 원예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 관리를 위해 ‘지역 자조금’을 도입하기로 하고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지역 자조금은 기존 자조금과 같이 품목을 기준으로 운영되지만, 특정 지역에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농식품부는 지역 자조금을 '의무' 자조금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의무 자조금 제도가 시행되면 해당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자조금 단체에 경작 신고를 해야 한다. 경작 신고는 농민이 소유한 토지에 얼마나 농작물을 재배할지 계획을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 입장에선 재배 규모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수급관리가 용이해진다. 정부는 대신 적정 재배면적 관리를 하는 생산자에게 지원한다.
농식품부는 지역 자조금 도입 대상으로 월동 무와 여름 배추, 가을·겨울 배추, 겨울 대파 등을 검토하고 있다. 월동 무의 경우 제주산이 전체 생산량의 약 98%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여름 배추는 강원 평창군과 태백시, 정선군에서 78%가 생산된다. 가을·겨울 배추는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에서 전체 물량의 약 79%가 수확된다. 경북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오미자와 자두, 전남 고흥에서 주로 나는 유자 등도 지역 자조금 도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국가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지역 자조금 제도 시행을 위해 자조금 제도를 규율하는 농수산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을 올해 안으로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법령은 자조금에 관해 ‘1품목 1단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배추나 무는 현재도 임의 자조금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법령을 개정해 같은 배추라도 여름 배추와 가을·겨울 배추처럼 ‘작형’에 따라 구분 지어 의무 자조금 단체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개정안 초안은 이미 완성된 상태"며 "자조금 단체 설립과 신청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하위 법령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농식품부는 특정 지역의 생산량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할 경우 지역 자조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자조금 법이 수산물도 포괄하는 만큼 수산물도 자조금 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 단 사과와 같이 의무 자조금 단체가 이미 조직된 품목은 지역 자조금 운영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식품부는 법령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도 자조금 조성에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자조금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마늘이나 양파의 경우 자조금 단체가 일정 금액을 모으면, 중앙 정부가 지원금을 더하는 방식으로 자조금을 조성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역 자조금의 경우 자조금 단체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까지 자조금 조성을 위해 재원을 부담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집중도가 높은 농산물인 만큼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자체가 수급관리에 참여할 필요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