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죽하면 암참이 나섰겠나

미국 기업 목소리 대변하던 암참
기회 놓치지 말자며 정부에 제안

김우섭 산업부 기자
“외국 기업 유치 전략 보고서 같은 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오죽 답답했으면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 이런 보고서를 썼을까요.”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엔 착잡함이 가득했다. 19일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한 ‘기업들 脫중국…한국, 아시아 허브 될 절호의 기회’ 기사(A1, 3면)를 접한 많은 기업인의 전화를 받았다. 이들의 얘기는 하나로 수렴됐다.암참뿐 아니라 많은 국내 기업인이 정부와 정치권에 “‘차이나 엑소더스’를 발판 삼아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유치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규제개혁과 세제 인센티브 등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싱가포르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제너럴모터스, 영국 다이슨 등의 아시아 본부를 유치했다.

기업인들은 암참이 내놓은 ‘글로벌 기업 아태지역 거점 유치 전략 보고서’에 글로벌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정답이 다 담겨 있다고 했다. 보고서가 주목한 나라는 50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정부는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규제 완화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법인세율이 대표적이다. 최고 세율이 한국(24%)보다 낮은 17%인데도,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부를 둔 기업에 한해 5~10%를 추가로 낮춰준다.

한국은 어떤가.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인센티브는 훨씬 적은 반면 규제는 많다. 암참이 외국 기업의 한국 입성을 막는 과도한 규제로 꼽은 △융통성 없는 주 52시간 근무제 △수시로 나오는 비정기 세무조사 △최고경영자만 힘든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등이 대표적이다.그나마 다행인 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최근 암참이 800여 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이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두고 싶은 국가’ 2위에 올랐다. 그런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정비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 많은 글로벌 기업이 아태 본부를 한국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고 암참은 내다봤다.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부 유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한국에 추가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다 세상이 다 아는 글로벌 기업이 택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가 한국에 가져다준, 외국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