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함으로 빚는 ‘팔팔’한 자부심, 팔팔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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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쌀과 끊임없는 연구. 팔팔막걸리 맛의 비결은 이토록 심플하다.팔팔양조장에는 막걸리의 산뜻한 주황색 라벨처럼 젊은 활기가 넘쳤다. 양조장 창립멤버인 정덕영 대표와 이한순 이사는 젊은 막걸리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한강주조 출신이다. 이들은 ‘우리만의 술을 만들어보자’는 포부로 팔팔양조장을 새롭게 열었다. 감각이 남다른 두 사람이 만든 작품인 만큼 전통 막걸리 레시피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도에 방점이찍혀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막걸리에 있어서는 융통성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본에 충실했다.팔팔양조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뛰어난 원료,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다. 경기도 김포에 양조장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도 최상급 쌀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쌀이 막걸리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들은 최고의 쌀을 찾아 수도권 정미소를 누볐다.“김포농협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정미소예요. 공장장님, 단장님과 미팅을 해보니 ‘정미소 중의 정미소는 김포농협, 쌀 중의 쌀은 김포금쌀’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프라이드가 높으셨죠.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보니 맛이 달랐어요.”(정덕영 대표)
김포쌀은 품질과 맛이 뛰어난 만큼 가격도 높다. 시중 막걸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원료와 비교하면 무려 세 배 이상 비싸다. 팔팔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보다 세 배 이상의 쌀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계산하면 원료비가 9배 이상 높은 셈이다. 그럼에도 막걸리 가격은 50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하고 즐기게 하려면 가성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생산장비를 대용량으로 갖춰 한 번에 생산하는 양을 늘리고, 자동화 설비로 인건비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가격 부담을 보완하고 있다.연구, 연구 그리고 연구
팔팔양조장 멤버들이 꼽은 맛의 비결은 BS공법이다. 바로 ‘밤샘’이다. 술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밤새 양조장을 지키기 때문이다.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관찰하고, 여러 변수를 바꿔가며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삿일이다. 정 대표의 “팔팔막걸리에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이유다.양조장 터를 구하고 설비를 갖추는 6개월 동안도 연구만큼은 쉰 적이 없다. 정덕영 대표와 이한순 이사는 집에 발효기를 설치하고 계속 실험과 테이스팅을 거듭하며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그들의 목표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지니면서도 탄산이 없는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 없이 단맛을 내려면 쌀에서 당을 충분히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발효 과정에서 지나친 탄산이 발생하기 마련. 오랜 기간 실험을 거듭하며 이전 회사에서 쌓은 경험에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마침내 탄생한 것이 팔팔막걸리다.팔팔막걸리는 시트러스 향이 감도는 산미에 타닌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목넘김 이후에는 입 안에 남는 맛 없이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여러 병을 연이어 마셔도 텁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다.
“요즘 많은 막걸리들이 첫 모금에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맛이 강해지고,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기에는 힘든 술이 되어버렸죠. 저희는 팔팔막걸리가 술 자체로도 맛있는 술, 먹기 편하면서 원료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술이 되기를 바랐어요. 자연스럽게덜 달고, 묵직하지 않아서 은은한 매력이 있죠. 그래서 취했을 때 가장 맛있는 술입니다.”일차적으로는 목표한 맛을 내는 데 성공했지만 팔팔양조장의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수시로 당도, 산도, 알코올 도수 등의 요인에 변화를 주며 이화학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관련 장비에 있어서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과감히 투자했다. 덕분에 5분, 10분 단위로 24시간 내내 술의 변화를 그래프로 체크한다.이렇듯 꼼꼼하면서도 치열한 연구를 거듭하는 것은 ‘팔팔막걸리만의 자체 효모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양조장을 제외하면 기성 누룩 제품을 구입해 술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정 대표는 “독자적인 효모로 술을 빚을 때 비로소 우리만의 차별성이 갖춰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팔팔막걸리를 위한 독자적인 품종의 쌀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농업진흥청이나 농업기술원의 연구원들과 교류하며 조언을 얻고 있다.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담은 만큼 맛에 대한 팔팔양조장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정 대표가 “팔팔막걸리의 목표는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때는 그도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팔팔막걸리를 판매하는 것을 꿈꿨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대규모로 납품하게 되면 유통 과정에서 냉장이 어렵고 품질이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맛없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당분간은 맛과 품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맛을 안정화하는 데 노력할 생각입니다. 팔팔막걸리에 들어가는 원료와 노력을 이야기할 때처럼 자신 있게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