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주고 집도 줄게"…'젊은 인재' 싹 쓸어가는 중국 [중국산 대공습 현장을 가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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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자생력 키우는 중국
세계적 학회에 수십명 中연구진…한국은 10명 미만
"방심하면 중국에 뺏긴다"…삼성·SK하이닉스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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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그들(중국 반도체 회사)도 '동종업계 취업제한' 같은 국내 실정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는 기술자를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원할 경우 우선 반도체와 관련이 없는 컨설팅 회사로 입사시킨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반도체 회사로 옮기는 방식의 '꼼수'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임원 승진에 실패한 차·부장급 기술자가 이 같은 유혹에 흔들려 중국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중국이 '반도체 전쟁'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인재다. 후발주자로서의 기술적 한계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해 파격 혜택을 내세워 전세계 인재들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으로의 반도체 첨단장비 반입을 차단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느낀다는 신호"며 "제재 초기엔 중국이 받는 타격이 컸지만 막대한 지원금과 거대한 내수시장 기반으로 반도체 기술 격차를 턱밑까지 추격했거나 일부는 추월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중국 수요 비중이 상당한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20억 주고 집도 줄게"...'반도체 풀뿌리 인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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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소재 명문대 이공계학과 교수 이모 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박사 졸업생들은 중국 반도체 회사보다 대부분 미국 회사 취직을 원했는데 연봉이 뛰면서 지금은 중국 내 반도체 회사 취업을 선호하고 있다. 정말 시대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리에핀빅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베이징 반도체 업계 평균 연봉은 30만위안(약 5500만원)으로, 중국의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소득 3만9218위안(약 740만원)의 7배가 넘는다.
'독' 아닌 '약' 된 미국 제재…"2030년엔 반도체 70% 자립"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중국은 2020년 반도체 관련 학과를 최상위 등급인 '1급 학과'로 승격하고 칭화대, 베이징대 등 전국 거점 대학에 반도체 대학원을 대거 신설했다. 중국 발전을 계획하는 '제14차 5개년(2021~2025)'에서 반도체 분야를 핵심안보 영역으로 설정하고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는 목표를 세웠다. 시진핑 주석 역시 "반도체는 인체의 심장"이라며 전폭 지원에 나섰다.
김 소장은 이 같은 중국의 빠른 성장 요인으로 '특수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팹리스(설계)가 약한데 중국은 이 분야가 잘 구축돼 있고 파운드리(위탁생산)와도 연계가 잘 돼 있다. 또한 칩을 내수시장에 풀었을 때 사주는 곳도 많다"며 "거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고른 반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해 성장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우 메모리 위주라 팹리스 분야 경쟁력은 밀린다는 지적이다.
"방심하면 중국에 뺏긴다"…삼성·SK하이닉스 비상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회사 IC인사이츠(IC Insights)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9%에 달한다. 미국(68%)이나 대만(21%)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1%)은 이미 추월했다. 노동집약적 분야로 꼽히는 후공정의 경우 해외 경쟁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성장해 기술력이 해외 기업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이 장비 수출을 차단하면서 중국 반도체 장비 자생력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이 2022년 30%대에서 2025년에는 50%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14nm 이하 첨단 반도체 공정 분야에선 장비 국산화율이 10% 안팎에 불과하나 28nm 이상은 국산화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소장은 "만일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 장비인 ASML의 EUV 노광장비 등이 중국에 투입된다면 한국 메모리 반도체도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지금도 격차가 2~3년 수준으로 금세 추격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정부 역시 적극 투자하고 있으나 (보안 이슈 등으로)삼성·SK하이닉스와 학계 등 산학연이 결집해 기초연구부터 산업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 1등이기 때문에 글로벌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2~3년 내 이뤄지는 상용화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좀 과감한 투자로 우리만 할 수 있는 독보적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메모리는 독자적으로 클 수 없다. AI 반도체 필수품인 HBM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란 얘기"라면서 "한국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반도체 미세화 등 제조공정 바탕으로 독보적 헤게모니(패권)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한경닷컴은 심층기획 '중국산 대공습 현장을 가다'를 총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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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대공습 현장을 가다] 1~6회 모아보기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