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부활절이면 들어야 하는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간주곡

[arte] 황지원의 오페라 순례

인터메초(Intermezzo)
해마다 부활절 즈음이면 생각나는 음악이 하나 있다. 봄 기운이 완연해지는 이 시절이면 그 선율이 더욱 아름답게 영글어가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찬란한 풍광의 시칠리아 섬을 배경으로 남긴 걸작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가 바로 그것이다.
시칠리아 섬의 풍경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는 지중해 특유의 내리쬐는 뙤약볕만큼이나 뜨겁고 정열적인 사람들이 사는 땅이다. 해마다 봄이면 시칠리아인들이 파스콰(Pasqua)라고 부르는 부활절 시즌이 오는데, 이곳 특유의 검붉은 과육을 지닌 오렌지 ‘아란챠 로사’가 알알이 익어가고, 아몬드 나무에서는 화려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시기다. 바싹 마른 대지 위로 지중해 특유의 짭조름한 공기가 희미한 미풍이 되어 연인들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불어오는 것도 바로 이 시절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부활절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소용돌이처럼 일어나는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비극을 다룬 오페라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영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스틸컷 ⓒ네이버 영화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마을로 돌아온 투리두는 약혼녀 산투차를 저버리고 예전에 만났던 미모의 여인 롤라와 다시금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롤라는 이미 알피오라는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 격분한 산투차가 알피오에게 투리두와 롤라의 애정행각을 고발하고, 흥분한 알피오는 피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칼을 꺼내든다. 이처럼 오페라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바로 그 직후에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저 유명한 ‘인터메초(Intermezzo)’ 즉, 간주곡이다.
영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오페라 속에서는 부활절 오전에 해당하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비극이 펼쳐질 후반부 사이를 나누는 기준점이 되는 음악이다. 인간들이 빚어낸 애증과 갈등이 세상사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격렬한 불길로 타오를 바로 그즈음, 음악은 마치 지중해의 미풍처럼 무심히 우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슴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음악에 써야하지 않을까. 지중해의 찬란한 풍광이 지닌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깊은 서정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낸 음악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영화 &lt;대부3&gt; 포스터 ⓒ네이버 영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대중적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 The Raging Bull> 첫 장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셰도우 복싱을 할 때 흐르는 바로 그 음악이며, <대부3>에서는 가슴 아픈 피날레 장면에 등장한다.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가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오페라를 보다가 지역 마피아들이 쓴 흉탄에 딸을 잃는다. 영화의 피날레는 대부의 절규와 이어지는 콜레오네 가문의 몰락을 서늘하게 보여주는데, 그 뒤로 간주곡이 너무도 구슬프게 흐른다. 여기서 대부의 딸 메리로 열연했던 이는 코폴라 감독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다. 지금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칸느 영화제 작품상까지 거머쥔 거장 영화감독이 되어 있고, 몇 년 전에는 오페라 연출가로도 데뷔했다. 젊은 시절 <대부3>에서 들었던 오페라 음악들이 영향을 줬는지도 모른다. 이 오페라는 20대의 청년 작곡가 마스카니가 단 몇 달 만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오페라다. ‘간주곡’이 전해주는 티 없이 맑은 서정과 찬란하면서도 서글픈 아름다움은 지금도 지구촌 그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활절마다 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
영화 &lt;대부3&gt; 스틸컷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