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민 보호' 프레임 벗어났더니 오히려 수출상품 된 포도

과일값 상승이 물가를 뒤흔드는 가운데 수입이 자유로운 포도 값이 안정적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5대 과일’ 중 사과 배 감귤 복숭아 가격은 1년 새 2배 안팎 급등했지만 포도는 17.2%(통계청 2월 소비자물가 기준)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의 첫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 이후 들여온 수입 포도가 국산 포도의 계절적 비수기를 메워준 덕분이다. 상반기엔 칠레, 하반기엔 미국, 연초엔 페루산 포도가 돌아가면서 풀리며 가격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반면 가격 폭등세의 주요 과일은 지난 한 해 수입 실적이 사실상 제로다. 사과·복숭아·배 수입은 ‘0’이고, 감귤은 141t 수입됐지만 국내 생산량(62만t)의 0.02%에 불과하다. 한·미 FTA 등으로 수입이 허용됐지만 한국의 강력한 위생·검역 조치를 뚫지 못해 통관이 봉쇄된 탓이다. 해외 병해충 유입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국내 과수농가 보호 목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과일 파동 국면에서도 일본·유럽산 사과 수입안이 거론되자 농업계와 강성 시민단체는 결사반대 모드다. 농민 희생을 강요하고 국내 생산 기반을 무너뜨려 식량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단견이다. 포도시장 개방 때도 ‘농가 다 죽는다’며 격하게 반대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포도 수출은 26배로 확대됐다. 부가가치 상승 및 원가절감 노력을 병행하고 샤인머스캣 등 다품종화에도 성공한 덕분이다. 가격 안정으로 소비자 후생도 증대됐다.

수입 절차를 시작해도 검역 완료까지 수년이 걸리는 만큼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기후 위기로 성장기 가뭄, 수확기 장마 등이 농업을 직격하고 있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과일발 물가난은 일상이 되고 말 것이다. 정부는 긴급 자금 1500억원 투입 등 총력전을 선언했지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기존 ‘농민 보호 프레임’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 없고 국민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