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청(傾聽)의 가치

이창권 KB국민카드 사장
기술의 발달로 사람은 ‘듣는’ 행위를 상당 부분 빼앗겼다. 필자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보고하거나 결재받으려면 상사한테 가서 ‘들어야’ 했다. 지금 웬만한 기업은 인트라넷(사내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직원과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시스템이 그렇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카톡이 가족과 친구와 애인 사이에서 입과 귀를 대신하고 있다.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려고 전화를 걸까 하다가도 주저하게 된다. 통화가 오히려 결례라는 생각마저 드는 세태다. 이걸 소통의 편리와 효율로 봐야 할지, 소통의 부재라고 해야 할지 사람마다 경우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듣는다는 의미인 ‘청(聽)’의 생긴 모양을 보면 그 안에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자를 뜯어보면 좌변에는 귀와 임금, 우변에는 열 개의 눈과 마음이 있다. 왕처럼 귀를 열고, 열 개의 눈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들으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듣는다는 뜻의 한자 단어로 청취(聽取)와 경청(傾聽)이 있다. 의미는 좀 다르다. 청취는 그냥 들어서 내 것으로 취한다는 데 방점이 있지만 경청은 귀를 기울여(傾) 듣는다는 걸 강조한다. ‘청(聽)’의 연원에서 보이듯 들을 때는 귀뿐 아니라 오감이 필요하다. 상대의 생각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 마음과 기분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경청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회의를 할 때 답답하고 급한 마음에 입을 내밀기는 쉬워도 귀를 잘 내밀기는 어렵다.리더의 경청하는 태도는 마음의 열쇠가 된다고 한다. 평소 주저하던 쓴소리와 건의도 눈치 안 보고 나오게 된다. 상대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 자신감, 창의성, 성취의 동기를 심어 준다. 그 이득은 어디로 갈까. 온전히 기업에 돌아온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진심으로 내 말을 듣고 있는지, 듣는 척만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눈을 보면 안다. ‘청(聽)’자에 열 개의 눈이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존경받을 수 있는 방법이 경청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고 했다.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는 기술과 운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조직 구성원과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게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안팎으로 귀를 쫑긋 세우려고 노력한다. 인공지능(AI) 로봇의 마음은 얻을 수 없지만 수시로 변하는 사람 마음은 얻을 수 있다.

2015년 서울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마윈 중국 알리바바그룹 창업자는 이런 말을 했다. “기술이 뛰어난 경쟁자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고객의 요구를 경청하는 기업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