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필립 파레노' 당최 어렵다고? 이 작가가 지단 축구영화도 만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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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계 핵인싸 필립 파레노는 누구인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전시 '보이스(VOICE)'. “갇힌 세계인 미술관에 틈을 내고 싶다”고 말하는 파레노의 발칙한 상상은 관람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지만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상당수.
그의 전작과 그 동안의 행보를 알면 실마리를 조금은 찾을 수 있다. 어떤 관람객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전시 내용도 달라진다니, 한번쯤 작가에 대해 알고 관람하는 건 어떨까.
필립 파레노는 누구인가
파레노는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파리 부르스드코메르스와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퐁피두센터, 루마아를,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파리근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MoMA, 테이트모던, 아이리쉬미술관, 반아베미술관, 와타리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파레노는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원래 수학도였다. 이후 1983년부터 그르노블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1988년부터 2년 간 파리 팔레 드 도쿄 인스티튜트 데 오뜨 에뛰드 앤 아트 플라스티크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다양한 미디어에서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했다. 그는 20대부터 “전시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매개체”라고 해왔다. 장소에 맞게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전시를 기획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다른 작가들처럼 ‘순회전’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장르의 경계도 넘나든다. 2006년 그는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스코틀랜드 예술가 더글라스 고든과 함께 장편 다큐멘터리 ‘지단: 21세기 초상’을 감독했다. 2006년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17대의 카메라를 사용한 독특한 축구 영화는 전설적인 프랑스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을 따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8만 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 대 비야레알 경기 전체를 촬영했다. 두 대의 카메라는 미군에서 빌려온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줌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영상은 경기장 안팎에서 지단의 모든 움직임을 생생하게 추적했다. 파레노는 2007년 영국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에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함께 그룹 전시인 ‘일 템포 델 포스티노(우편배달부의 시간)’을 연출하고 공동 기획해 2009년 아트 바젤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더그 아이켄, 매튜 바니 & 조나단 베플러, 타시타 딘, 트리샤 도넬리, 올라퍼 엘리아슨, 리암 길릭,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어스터, 더글러스 고든, 카스텐 회러, 피에르 휘게, 구정아, 안리 살라 15명이 넘는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이외에도 아티스트 리암 길릭과 ‘해변을 통해 달로’(2012)를 제작해 프랑스 아를의 원형 극장에서 전시했다. 당시에도 22명의 예술가와 함께 작업하는 등 혼자가 아닌 여러 분야의 예술가와 함께 하는 데 능한 독보적인 예술가다.
루이비통, 테이트모던이 열광한 현대미술계 스타
미술계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는 기회는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많았다. 2022년 10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루이 비통 패션쇼의 배경으로 제작된, 붉은 색 대형 꽃잎 세트 ‘몬스터 플라워’가 그의 작품이었다. 이 세트 디자인은 헐리우드 디자이너 제임스 친룬드와 그가 협업했다.루이 비통의 여성 컬렉션 예술감독인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와의 오랜 우정이 이 작품으로 이어진 것. 활짝 핀 꽃 모양의 기념비적 설치물인 이 세트는 루브르 박물관 뜰에 높이 최대 27m로 만들어졌다.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아 회전목마의 대형 천막처럼 꾸며졌는데, 거대한 지퍼가 달린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원을 그리며 파레노의 런웨이 위를 걸었다. (오징어게임의 정호연이 섰던 그 무대, 맞다!) 깜빡이는 조명은 작가의 이전 작업인 2015년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선보였던 작품 중 일부였다. 파레노는 “패션 위크를 위해 전 세계에서 관중들이 한 도시에 몰려왔다 흩어지는 ‘유목민’이라는 컨셉을 적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대표 전시 중 하나는 현대자동차와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협업 프로젝트인 ‘현대 커미션’. 2016년 필립 파레노를 현대 커미션의 작가로 선정해 선보인 전시 ‘애니웬(Anywhen)’에서 그는 과거 화력 발전소 건물이었던 미술관의 터빈 홀을 자신의 작품으로 가득 채웠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 세계를 미술관으로 들였다. 물고기 모양의 헬륨 풍선, 영상 작업을 보이는 스크린과 일괄적인 움직임으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차광막과 조명들 등 매 순간 변화하는 전시 요소들로 작가는 전시장을 채웠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발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불특정 다수인 관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을 경험하게 했다.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세계 주요 미술관이 사랑하는 이유
어디서나 완전히 새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는 건 미술계가 그에게 열광하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 베를린의 마틴-그로피우스 바우에서 2018년 열었던 대규모 개인전 ‘Looking back on a Future’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의 전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My Room Is Another Fish Bowl’은 전시장을 이동하는 관객으로부터 발생한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관람객의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파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리며 대표 작품이 됐다.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의 전시에서는 생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을 과감하게 결합했다. 수학을 전공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필립 파레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는 걸 온전히 보여준 전시였다. 생물학,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와 협업한 것도 그의 수학자적인 사고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2019년 필립 파레노가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오픈에 맞춰 선보인 커미션 작업 ‘Echo’도 동일한 형태와 맥락을 지녔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주변 환경 데이터에 반응해 조명이 달라지는데 그의 작품에 있어서 관객과의 상호 작용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프랑스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로툰다에서 2022년 선보인 전시도 그랬다. 커다란 LED 화면 위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초기 영상 작품 ‘세계 어디에서나(Anywhere Out of the World)’가 비치는데. 가상 캐릭터인 앤 리는 관객과의 교류를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그 주위로 자리 잡은 안테나 모양의 설치 작품 ‘헬리오트로페스(Heliotropes)’(2022)가 유리로 된 천장 돔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반사해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을 만들어냈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