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작가 제프 쿤스, 마침내 달에서도 전시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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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2024년 2월 22일,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미국 민간 달 탐사선 착륙 성공’이었습니다. 인튜이티브 머신스(Intuitive Machines)의 오디세우스가 달의 남극에 착륙한 것이죠.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입니다. 이 미션은 NASA의 달 유인기지 건설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미션’ 중 하나입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시작된 프로젝트는 유인 우주선으로는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50여년만에 사람을 다시 달로 보낸다는 계획입니다. 이번에는 몇 시간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이죠. 50여년 전과 달리 다양한 민간기업과 나라가 참여합니다.
제프 쿤스의 월상 프로젝트(Moon Phases project)
오디세우스는 달 탑재체 수송서비스의 일환입니다. NASA의 관측장비 6개를 싣고 가며, 다양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50여년만에 달에 갔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번 오디세우스에는 특별한 아이템이 실려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이 사랑하는 현대미술 작가, 제프 쿤스의 작품입니다. ‘월상’(Moon Phases)으로 명명된 그의 작품은 달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125개의 조각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작품을 달에 설치했는데, 지구 밖에 설치된 최초의 지구인 공식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과거 인터뷰 [2023년 12월]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가 제프 쿤스
달에 하나, 지구에 하나, 가상세계에 하나
‘예술작품을 달에 설치한다’는 간단한 명제에서 시작한 월상 프로젝트는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달에 설치된 작품(직경 1인치), 그와 상응하는 지구에 남는 작품(15.5인치), 마지막으로 NFT입니다. 달-지구-가상세계를 잇는 세 개의 작품이 하나의 세트로, 총 125개 버전이 있습니다. 작품 구매자는 지구에서도 작품을 소유하고 있지만 대략 34만 4400키로미터 떨어진 달에 영구 설치된 소장품이 있는 셈입니다. NFT로 제작된 가상세계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왜 하필 NFT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기로 시계를 되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월상’ 프로젝트는 4년 전 과학자이자 디자이너인 샹텔 바이에(Chantelle Baier) 4스페이스(4space) 창립자와의 협업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2021년 페이스로 전속갤러리를 옮긴 쿤스는 NFT등 미래 작품 소유 플랫폼을 꾸준히 연구하는 페이스 버르소(Pace Verso)와 협업하게 됩니다. 아리엘 휴즈(Ariel Hudes) 페이스 버르소 대표는 2023년 2월 GQ에 “투기자산으로 취급되는 일부 디지털 아트와 달리 우리는 각 아티스트에 맞춤화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며 “블록체인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 영속성을 담보한다면, 달 표면 그 자체가 블록체인 아닐까”라고 설명합니다. 125개 버전은 지구에서 본 달의 모습 62개, 우주에서 본 달의 모습 62개 그리고 한 번의 월식입니다. 각 세트마다 이름이 붙었는데 플라톤, 석가모니, 공자, 네페르티티, 앤디 워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보위, 헬렌 켈러 등 인류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입니다. 지역과 시대, 장르, 성별을 고루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프 쿤스를 전속하는 페이스갤러리는 “미래세대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일부를 기린다”고 설명합니다.지구에 남는 조각에는 깨알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같은 보석이 하나씩 박혔습니다. 보석의 박힌 위치는 당연히 작품이 설치된 곳입니다. 일명 ‘달 문화지구’(Lunar heritage site) 인데 인간의 우주선이 착륙한 공간들을 말합니다. 조각은 제프쿤스 특유의 거울 같은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됐습니다. 달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디테일도 눈길을 끕니다. 제프 쿤스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명의 아티스트로 살아온 개인의 역사가 보인다. 이퀼리브리엄 시리즈(농구공을 유리 케이스에 넣은 시리즈)와 나이키 포스터의 열망도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쿤스 입장에서는 개인의 역사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되는 것이죠. 한 세트의 가격은 200만달러. 판매수익은 전액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됩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지구 밖 '최초' 설치
제프 쿤스의 ‘월상’을 ‘지구 밖에 설치된 최초의 예술작품’이라고 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미 지난 1969년에 예술작품 하나가 비공식적으로 달에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의 성공 이후 같은 해 11월에 출발한 아폴로 12호의 다리에 부착된 작은 타일(세라믹 웨이퍼)입니다. 이른바 ‘달 미술관’(Moon Museum)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로버트 라우셴버그, 앤디 워홀, 포레스트 마이어스, 데이비드 노브로스, 클라에스 올덴버그, 존 체임벌린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로 1.9센치 세로 1.3센치로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사이즈 타일입니다. 6명의 작가는 외계 생명체가 인류의 흔적을 발견하길 바라며 간단한 선, 네모, 남성 성기, 미키마우스, 기하학적 도형, 컴퓨터로 그려낸 간단한 그래픽 등을 그렸고, 이를 에칭한 세라믹 웨이퍼를 제작한 후, NASA의 공식 허락 없이 무단으로 우주선에 실었다고 합니다.달 미술관 프로젝트는 아폴로 12호 발사 당시엔 알려지지 않았다가 포레스트 마이어스가 아폴로 12호가 달을 출발한지 이틀 뒤인 11월 22일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하면서 밝혀집니다. NASA에서는 ‘달 미술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NASA의 대변인은 “해당 작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만약 우리가 그런 요청을 받았다면 매우 관심을 가졌을 것 같다. 그들의 주장대로 은밀한 방법으로 성공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작품이 미국 현대 미술의 최고를 대표했으면 좋겠다"고 뉴욕타임즈에 코멘트한 것이 전부입니다. 달에만 예술작품이 간 것은 아닙니다. 1977년, 목성형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엔 지구와 인류를 소개하는 이미지와 소리가 담긴 구리 축음기 디스크 ‘골든 디스크’가 실렸습니다. 수식, 올림픽, 도시, 아이와 엄마, 자연 등을 담은 115개의 이미지와 파도, 바람, 천둥, 새, 고래 및 기타 동물이 내는 자연의 소리가 담겼고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음악과 55개 언어로 된 지구인의 인사말도 포함됐습니다. 골든 디스크 표지엔 레코드 재생 방법이 이미지로 쓰여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칼 세이건의 말대로 “진보된 우주 여행 문명이 있는 경우에만 기록이 재생될”수 있겠죠.
제프 쿤스는 누구?
처음이냐 아니냐를 떠나 제프 쿤스의 월상 프로젝트는 도전적이고 전복적이며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시장친화적인 작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천재적’이라는 평가가 절로 나오는 이유죠. 달이 “가장 오래된 TV”라고 치켜세운 백남준 이래, 달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가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유욕’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이제는 달까지 확장했으니까요.1955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난 제프 쿤스는 메릴랜드예술대학과 시카고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바로 예술가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것 같지만, 1980년 스물 다섯의 쿤스는 뉴욕에서 뮤추얼펀드·증권 거래인으로 활동합니다. 공식자리에선 늘 딱 맞춘 수트를 입고 나타나는 작가의 태도는 이때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이 던지는 곤란한 질문에도 달변으로 답하는 역량이나 전시를 찾은 관객들 한 명 한 명을 VVIP컬렉터처럼 대하고, 아트페어에 몰려든 자신의 팬들 앞에선 ‘겸손한’ 슈퍼스타로 변하는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쿤스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풍선개’입니다.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풍선개는 겉보기엔 가벼워 둥둥 떠다닐 것 같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조각입니다. 이처럼 풍선 동물, 장난감 등 일상적 사물을 사이즈를 거대하게 키우거나 재료를 바꿈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킵니다. 초기작에선 미국 대중문화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암묵적으로 지키는 ‘제약’을 간단히 넘겨버리는 쿤스 특유의 ‘비틀기’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소비주의와 대중문화를 잘 넘나든다고 비평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그저 얕은 수준의 상업적 작품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20세기 후반-21세기 초에 걸쳐 가장 논쟁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습니다.
작품가에서도 이 같은 영향력은 그대로 드러나는데, 작가의 경매 최고가 기록은 9110만 달러(약 1200억원)입니다. 2019년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낙찰된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 ‘토끼’가 그 주인공입니다. 아직까지 생존 작가 기록 중에선 최고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주에 이루어낸 업적은 인류의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한다. 우주 탐사를 통해 세상의 제약을 초월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 ‘월상’은 10여년 뒤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미술시장의 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