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물가 안정 협조" 전방위 압박…고심 깊어지는 곳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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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유통·식품·외식 업계에 물가 안정 협조 주문먹거리 물가가 뛰면서 정부가 식품·외식업계에 물가 안정 동참을 재차 압박하고 나섰다. 연일 업계를 찾아 가격 안정 협조를 요청하면서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유통업계에 장바구니 부담 완화를 위한 축산물 할인 행사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전날 피자알볼로 목동 본점을 찾아 외식업계에 협조를 요청한 데 이어 이날은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을 방문해 물가 점검에 나섰다.한훈 농식품부 차관도 홈플러스 강서점을 방문해 축산물 행사 협조를 당부했다. 한 차관은 홈플러스와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관계자 등을 만나 "국민들이 축산물 가격 인하를 충분히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 할인 행사에 더해 대형마트, 자조금 등에서도 자체 할인행사를 추가로 추진해달라"고 말했다.송 장관은 전날 현장 간담회에서 외식 단체에 원가절감 등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흡수하는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소비자단체에는 적극적 물가 감시로 물가 안정에 기여해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농식품부가 CJ제일제당·오뚜기·롯데웰푸드· 농심 등 19개 식품사 대표와 간담회를 열고 가공식품 물가안정 노력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업체들도 거듭된 정부 주문에 움직이고 있다.CJ제일제당은 지난 19일 송 장관의 공장 방문을 앞두고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제품 가격 인하 결정을 발표했다. 인하 대상 품목은 중력 밀가루 1㎏, 2.5㎏ 제품과 부침용 밀가루 3㎏ 등 3종으로 다음달부터 평균 6.6% 인하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 측은 "최근 국제 원맥 시세를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분, 삼양사, 사조동아원 등 역시 밀가루 가격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정부 압박이 이어진 만큼 다른 식료품으로도 가격 인하 움직임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가 정조준한 품목은 슈가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 우려가 일고 있는 설탕이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9일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에 조사원을 파견해 설탕 가격 담합 의혹을 조사했다.지난해 식품사들이 라면과 빵, 과자 등 일부 제품 가격을 내린 데 이어 올해도 추가 인하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달 초 밀가루 원재료인 소맥과 식용유 원재료인 대두유 가격이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했다며 식품사가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성명을 통해 촉구한 바 있다. 협의회는 녹색소비자연대 등 10여 개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곡물의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100)는 지난해 3월 170.1로 고점을 기록한 후 점차 하락해 지난 2월 113.8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유지류의 세계식량가격지수 역시 251.8에서 120.9로 내려갔다.식품사들이 지난해 전년보다 뚜렷하게 이익이 개선된 점도 정부와 소비자단체가 압박하는 한 이유다. 수출 호조와 환율분 등을 고려해도 원재료 가격 부담이 줄어들면서 이익이 증가했다는 것이다.지난해 풀무원은 영업이익이 전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고, 농심과 롯데웰푸드 역시 영업이익이 각각 89.1%, 57.5% 급증했다. 동원F&B, 오뚜기 역시 영업이익이 20~30%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외식업계에서는 버거킹 운영사 BKR이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의 세 배 수준인 200억원대로 회복됐다. 순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가격 인하 요구에 고심하고 있다. 일부 원재료의 경우 국제 가격이 하락했지만 설탕 원재료인 원당 등은 여전히 높은 수준인 데다 총체적인 비용 인상 요인은 여전하다는 토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의 정부의 물가 안정책 협조의 일환으로 상승분을 오랜 기간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현재는 여전히 원자재 가격이 높은 시기에 매입한 원재료가 투입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