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소액주주 이사회 입성 막는 ‘꼼수’ 기승

행동주의펀드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가운데 이들의 이사회 입성을 막으려는 회사 측의 방어 수법도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계열사들이 지분율 3% 이내로 품앗이로 지분 매집에 나서면서 의도적으로 '3%룰'을 대비하려는 행보가 눈에 띄었다. 감사위원회 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던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경ESG] ESG NOW
사진=연합뉴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소액주주의 이사회 입성을 막으려는 ‘꼼수’가 기승을 부렸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를 회피하려는 움직임 등이 나왔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제도로, 소수주주의 제안을 존중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행동주의펀드가 영향력을 키우는 만큼 회사 측의 방어 수법도 더욱 정교해졌다. 계열사들이 3% 이내로 ‘품앗이’ 지분매집에 나서 고의적으로 3%룰을 회피하거나 이사회 정원을 늘리는 대신 소액주주 추천 후보를 1명으로 제한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사례가 나타났다.

3%룰 회피 위해 계열사 ‘품앗이’ 매집

대표적인 곳이 사조그룹이다. 사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주주명부가 폐쇄되기 직전 석 달간 계열사끼리 ‘품앗이’로 지분을 사주면서 그룹사 전반에 방어선을 쳤다. 사측 의결권이 늘어난 곳은 사조대림, 사조산업, 사조동아원, 사조오양, 사조씨푸드로 모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시가총액 규모가 적게는 600억원(사조씨푸드)부터 최대 3000억원(사조대림)에 이른다.매집해 확보한 지분율은 모두 3%를 넘기지 않았다. 삼아벤처와 사조아메리카는 사조씨푸드 지분을 각각 1.36%, 2% 사들였다. 사조산업에는 삼아벤처가 2.4%에서 3%까지 지분을 늘렸고, 사조농산도 0.05%를 신규 확보했다. 사조산업과 사조동아원은 각각 사조오양 3% 주주가 됐다. 사조대림 주식 매집에는 오너 일가도 참여했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과 주지홍 부사장이 주식을 신규 취득했다. 각각의 지분율은 1.30%, 2.54%에 이른다.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감사위원 선임에 적용되는 3%룰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3%룰은 감사(위원)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최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말한다.

사조그룹은 2년 전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추천한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가 소액주주의 지지를 받아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사조오양 최대주주는 사조대림(지분율 60.53%)으로 당시 배당, 정관 변경, 자사주 매입 등 주요 주주제안을 부결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감사위원 선임만은 3%룰 탓에 막지 못했다.‘거수기’ 이사들 사이 이상훈 감사위원의 독자노선은 사조그룹에 번번이 눈엣가시가 됐다. 이 교수는 지난 2년간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설치의 건, 내부거래위원회 설치의 건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안건에 나 홀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를 계기로 사조오양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도 소액주주의 지지를 얻은 감사위원이 선임될 것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순환출자를 늘린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외이사 후보는 한 명만 추천해라”

이사회 인원을 늘리면서 기존 이사진은 유임시키고 주주 추천 후보는 1명으로 제한하려는 사례도 꼼수로 지적됐다. JB금융지주 사례다. 회사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수를 기존 9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신 기존 장기 재임 중인 사외이사 전원은 유임시키고 행동주의펀드 측 추천 후보를 1명으로 제한했다. 2022년 지분 14%를 확보해 2대주주로 올라선 뒤 행동주의 캠페인을 펼치는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앞서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비상임이사 후보로 5명을 추천했다. JB금융은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 중 이희승 후보(리딩에이스캐피탈 이사)만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다수 이사를 추천하면 이사회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이해 충돌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회사는 이 후보와 OK저축은행에서 추천한 이명상 후보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사외이사 후보를 1명만 추천해야 한다는 JB금융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후보가 더 나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췄는지를 놓고 공정하게 경쟁해 주주 의사에 따라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JB금융 이사회가 분리선출 사외이사 감사위원 숫자를 1명에서 4명으로 증원해 집중투표 대상이 되는 이사의 수를 축소했다”면서 이는 “일반주주가 1명이라도 분리선출 사외이사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를 자의적으로 운영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DB하이텍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회사는 원래 이사회 정원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가 이번에 이사회 정원을 4~8명으로 조정하는 정관 변경을 안건으로 올렸다. 현재 DB하이텍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으로 '6인 체제'다. 이중 황철성 사외이사 임기가 이달 만료되는데 회사는 황 이사의 재선임과 함께 이상기 기술개발실장을 사내이사로 임명할 계획이다. 이들 선임안이 가결되면 남은 건 한 자리뿐이다. 이 자리를 두고 소액주주연대와 행동주의펀드 KCGI가 경쟁해야 한다. 현재 소액주주연대와 KCGI가 각각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를 추천한 상황이다.

회사 측은 KCGI 측이 제안한 후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됐다. KCGI는 앞서 DB하이텍을 상대로 행동주의 캠페인에 나섰다가 합의에 이르면서 캠페인을 종료한 바 있다. 회사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대가로 사외이사 지명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연대는 “이사회 정원을 정해 소액주주 연대 측 인물이 합류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과도한 조치”라고 입장을 밝혔다.

주총소집 ‘기습’ 공고로 주주제안 봉쇄

KCGI자산운용이 행동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도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KCGI자산운용은 앞서 분리선출된 서창진 감사위원 임기가 3월에 만료되는 만큼 주총 때 주주 측 감사위원 후보를 제안할 예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불발됐다.

임시 주총 소집공고 공시 시점이 문제가 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11월 17일 이사 선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한다고 공시했다. KCGI자산운용은 이 시점이 너무 촉박했다고 지적했다. 상법상 주주가 주주제안을 하려면 주총일 6주 전 회사에 서면으로 그 내용을 전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회사가 주총 소집일(12월 29일)로부터 정확히 6주 전 당일에 일정을 공시하는 식으로 사측에 유리하게 꼼수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KCGI자산운용은 회사가 2호 안건으로 분리선출 감사위원 안건을 추가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고 소액주주의 감사위원 추천을 원천 차단하는 의도로 보인다“며 “일반주주의 이사선출권 보호 제도를 훼손했다”고 말했다.KCGI자산운용은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약 2%를 보유하고 있다고 알리면서 회사에 최대주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내이사직 사임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하지은 한국경제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