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위해 파묘까지…"반도체 패권전쟁 뒤쳐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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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언론에 첫 공개서울 여의도 면적 1.4배 규모(약 126만 평) 부지의 한편에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땅 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지 조성 공사를 하고 있어 군데군데 산등성이의 굴곡이 남아 있고 길은 울퉁불퉁했다. 덜컹거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공사 현장을 둘러보니 휑한 부지 사이로 모래언덕과 중장비만 계속해서 나타났다.
여의도 1.4배 면적 땅고르기 한창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에 구축하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찾았다. 한국경제신문이 동행 취재했는데, SK하이닉스가 공사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안 장관은 “2027년부터 이곳에서 HBM, PIM 등 최첨단 메모리를 생산한다고 들었다”며 “세계가 반도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지금 용인은 전투 현장과 다를 바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사장은 “오늘 새벽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자국 기업인 인텔에 26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뉴스를 보면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실탄 장전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클러스터를 어떻게 잘 조성하는지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며 정부의 지원을 당부했다.
미국 정부가 인텔에 지원한 26조원의 보조금은 역대 최대 규모다. 지금까지 확정된 보조금의 최대 규모는 15억달러였다. 반도체 업계에선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K하이닉스는 2046년까지 총 120조원 이상을 투자해 총 4기의 반도체라인을 구축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2019년 2월 발표했다. 하지만 공장 인허가와 토지 매입 협상 등으로 개발이 지연되면서 2022년 말에야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됐다.부지가 워낙 넓은 데다 양지 바른 곳이다 보니 이장해야 하는 묘지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현장 관계자는 "옮겨야 하는 묘지만 1500여개였는데 선조 무덤을 마음대로 팔 수 없다며 가족분들의 고민이 많았다"며 "마지막 이장이 이뤄진 게 불과 6~7개월 전"이라고 말했다. 묘지 이장에 동의한 이들은 국가를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지 평탄화 작업을 마치면 내년 3월께 반도체 팹(공장) 1기 착공이 시작된다. 공사가 완료되면 세계 최대 규모의 3층짜리 반도체 팹이 들어서게 된다. 다만 이런 공정 건설 속도는 경쟁국과 비교해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2021년 일본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2년4개월 만인 지난 2월 완공 행사를 열었다.
안 장관은 “우리 기업이 뒤처지지 않도록 투자세액공제의 일몰을 중장기적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재정당국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부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적기 조성을 위해 기반시설에 대한 국비 지원 기준 등이 담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 지원방안’을 이달 발표할 계획이다.
용인=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