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염치없는 정치인들

여야 공천 눈살 찌푸리게 해
이제 국민들의 판단만 남아

강동균 편집국 부국장
최근 무명에 가까운 한 축구선수의 ‘은퇴 선언’ 글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간 선수생활을 하며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담아냈는데 그 내용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국내 프로축구 2부리그인 K리그2 천안시티FC에서 골키퍼로 뛴 임민혁(30)이 주인공이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프로, 아마 등 총 18년 동안 이어온 축구 선수의 삶을 폐막하려 한다”며 “열정 있고 성실한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자기 비하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후련하다. ‘추한 선배는 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 하나는 지키고 그만두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그의 은퇴 선언에 많은 누리꾼이 “후배들에게 참 염치가 있는 선수”라며 앞길을 응원했다. 다음달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공천 과정에서 염치를 내팽개친 정치인이 쏟아지는 상황과 대비되면서 임 선수의 글에 더욱 공감이 갔다.

염치(廉恥)는 ‘염조지치’(廉操知恥)의 약자다.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를 합친 합성어로,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염치는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지만 여야에는 염치를 모르는 정치인이 넘쳐난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서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비례대표를 겨냥한 당을 만들어 총선에 뛰어든 조국이 대표적이다. 그는 22대 국회에서 자신과 가족의 한을 풀기 위한 ‘한동훈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해 염치가 없는 것을 넘어 말문을 막히게 했다.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공천을 압박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염치없음에선 뒤지지 않는다. 그는 이 지역에서 재선을 한 뒤 3선을 노리던 2012년 자신의 보좌관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지역구를 한양대 후배인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물려줬고, 홍 원내대표는 내리 3선을 했다. 임 전 실장은 2019년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며 정계 은퇴 선언까지 했다. 그런 그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정치 복귀를 선언한 것에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요즘 재계에선 뛰어난 경영 성과를 내고도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는 최고경영자(CEO)가 적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4선, 5선을 하고도 의원 한 번 더 하겠다고 나서는 중진들도 염치없기는 마찬가지다.

영등포갑에서 4선을 하고 국회 부의장까지 올랐지만 공천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갈아타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는 김영주 의원의 행태는 누가 봐도 기이하다. 대전 유성을에서 5선을 한 이상민 의원도 공천을 위해 당을 옮겨 역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다.경기 부천을에서 5선을 했지만 공천에 반발해 민주당에서 새로운미래로 간 설훈 의원, 김대중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거친 뒤 80세가 넘었는데도 지역구를 바꿔 공천을 따낸 4선의 박지원 전 의원, 4선 의원과 통일부 장관, 대선 후보까지 지내고도 부족했는지 다시 총선에 뛰어든 정동영 전 의원 등도 염치를 내던졌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는 이들 정치인의 처사는 염치가 없는 것을 넘어 부박(浮薄)하다.

가장 염치가 없는 정치인은 자신의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해 ‘비명횡사, 친명횡재, 대장동 대박’ 공천을 했다는 비판에도 ‘혁신 공천’이라고 강변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는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자신을 단수 공천하는 ‘셀프 공천’을 하며 염치없음의 끝판을 보여줬다. 이제 남은 건 20일 뒤 이들 염치없는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