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처럼 바뀌는 서울 날씨…대한민국에서 과일 사라진다 [노유정의 의식주]

"고물가는 이제 뉴노멀"

이상기후로 6대 과일 생산량 급감
2100년엔 사과 재배 사실상 '불가'
농촌인구 줄고 고령층만 남는다


‘금사과’ 파동이 최근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도매가 기준 10㎏에 9만원을 넘으면서 프루트플레이션(과일+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유행했죠.하지만 사과만의 문제도, 올해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금딸기, 금대파, 금상추 금징어…. 뉴스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말들입니다. 고물가의 핵심 원인이 농수산물이 된 상황인 거지요.

과일 채소가 너무 비싸서 마트에서 들었다가도 내려놓는 지금같은 상황. 앞으로는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흐름, 이상기후와 고령화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뉴스1

이상기후의 습격…과일 ‘직격탄’

올해 사과 가격이 유독 높은 건 지난해 생산량이 유난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사과 생산량은 39만4000t으로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였습니다. 전년인 2022년보다 30% 넘게 감소했죠. 작황 부진이 이유입니다.
지난해 급감한 사과 생산량.
이런 상황에서는 비싼 사과를 큰맘먹고 사도 맛없을 수 있습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작황이 안 좋은 상황이라 도매시장에 나오는 특품 자체가 예년보다 적은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6대 과일’은 사과·배·감귤·복숭아·포도·단감입니다. 포도에는 샤인머스캣도 포함되지요. 이중 지난해 생산량이 증가한 과일은 귤 단 하나입니다.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과일이죠.공통 원인은 이상기후입니다. 꽃이 피는 개화기에 날씨가 너무 추워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겁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과일들도 여름철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떨어지거나 말라붙었습니다.
부진한 6대 과일 생산량
이상기후에서는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힘들어집니다. 우리나라 대표 수산물인 오징어 생산량이 36% 줄었다고 통계청이 최근 발표했죠.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니까 오징어가 북쪽 바다로 올라간 겁니다.

폭염에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폐사하는 경우도 늘고 잇습니다. 미국에서도 요즘 소고기 가격이 사상 최고치 수준인데, 가뭄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먹일 풀이 없으니까 소 사육두수가 역대 최저로 급감했다고 하지요.이상기후는 악화될 일만 남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농업진흥청은 앞으로 90년 후의 우리나라 재배 지도를 예측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과 재배지도
사과의 경우 2020년까지는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 지역이 재배가능지입니다. 하지만 2040년께는 전라도 일부 지역이랑 강원도만 남기고 재배가능지역이 거의 없어지죠. 2091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재배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2100년 사과 재배 지도
배와 복숭아도 이때쯤엔 강원도 일부 산지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걸로 예측됩니다. 반대로 제주도가 주산지인 귤은 인천과 서울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집니다. 서울, 인천 날씨가 제주도처럼 바뀐다는 거겠죠.


농촌이 무너진다

이상기후로 작황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농부들도 늙거나, 농촌을 떠나고 있습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농가인구는 지난해 214만명에서 2033년 174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입니다. 10년 만에 70만명이 사라지는 겁니다.

고령화는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은 지난해 49.8%에서 2028년 51%를 넘을 전망입니다. 농부가 줄어드는데 그나마 남는 분들도 고령층이면, 재배면적도 줄어들 수밖에요. 스마트팜이나 드론 등 신기술 도입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심화하는 농촌
농업, 어업, 유통업계 다 고령화와 이상기후를 수 년 전부터 경고해왔습니다. 그런데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대형마트에 쿠폰 등으로 할인 지원을 하고, 농산물 비축량을 풀고 있습니다. 올해 가격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농수산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습니다. 언젠가 치솟는 가격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농업생산성 유독 낮아…“농업의 법인화 필요”

우리나라는 농업생산성이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입니다. 주력 농산물의 면적당 수확량이 웬만한 나라보다 적거든요.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작물인 쌀의 헥타르당 수확량은 6.5t으로, 일본(6.6t), 중국(7t), 미국(8.5t)보다 적습니다. 사과의 헥타르당 수확량은 13.4t으로 미국(38.9t)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미국이 땅 10평에서 사과 100개 딸 때 한국은 33개밖에 못 딴다는 거죠.
미국처럼 농부 개개인이 넓은 농지를 갖고 있으면 농기계를 쓰기 쉬워 생산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너무 많고, 땅값도 너무 높아서 농부들이 땅을 크고 넓게 사모으기 어렵죠.

그래서 농사 기업을 만들어서 규모의 경제를 해보자는 ‘농업의 법인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농가들이 모여서 법인을 만들거나, 처음부터 기업을 만들어서 농부들을 직원처럼 고용하는 거죠. 법인을 만들면 투자를 받아서 좋은 농지도 사고, 신기술도 도입할 수 있고, 농산물을 유통하고 마케팅하기도 쉬워질 겁니다. 농부들은 농사만 잘 지으면 소득이 보장되니까 좋고요.

농업선진국 뉴질랜드의 대표 농업 기업 ‘제스프리’가 그렇습니다. 제스프리는 뉴질랜드 키위 농가 지분이 100%인 농가조합입니다. 전 세계 50여개 나라에 키위를 판매해 연매출 약 3조3000억원을 벌어들입니다.

제스프리는 키위의 사계절 공급을 위해 겨울에는 지구 반대편 나라들에서 날씨가 비슷한 나라들의 농가들과 계약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제스프리랑 계약한 제스프리 농가들이 300곳 정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온갖 농사 유통 기술을 다 개발해서 전수해주니까 생산성도 올라가고, 수확한 키위는 사가니까 소득도 보장되죠.
우리나라도 이런 농업법인들이 점점 생기고는 있는데요. 대부분이 아직 4인 이하 영세 법인으로 사실상 가족 자영업자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 대기업을 꼽자면 하림 정도일까요? 마땅한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대기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죠. 하지만 지금처럼 산업 자체가 위기인 상황에서는 농가들이 중대한 결단을 할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황우정·박지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황우정 PD